전자문서 송신 믿은 데 ‘정당한 이유’ 있어
1심 원고 승소→2심 패소→대법 상고기각
보이스 피싱범에게 명의를 도용해 비대면으로 사기 대출을 당했더라도 은행이 본인 확인 등의 노력을 다했다면 대출약정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서 말하는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가 보냈다고 간주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A 저축은행에 대출계약 취소를 위해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자신도 모르게 거액의 빚을 진 피해자인 원고는 2022년 7월 13일 딸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범에게 본인의 운전면허증 사진과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를 전송했고, 성명불상자로부터 링크를 받아 스마트폰에 원격제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이후 보이스 피싱범은 비대면 방식으로 A 저축은행에 원고 명의 계좌를 개설한 다음 9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원고는 명의를 도용한 대출은 무효라며 채무 부존재 확인을 구했다.
A 저축은행은 대출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로 △신분증이 찍힌 사진을 제출 받았고 △원고의 다른 금융회사 계좌에 1원을 송금해 인증 번호를 회신 받았으며 △원고 명의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을 했다.

대출의사 확인 노력 다해”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는 수신자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해 전자문서가 송신됐다고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는 작성자가 송신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해당 조항에 따라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사안인지 여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됐다.
1심은 실명 확인 과정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미흡했다며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에서 ‘원고 패소’로 뒤집혔다.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하면서 은행이 승소한 2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피고 은행이 취한 본인 확인 절차는 당시 기술 수준과 법령 등에 비춰 적정하다고 봤다. 특히 복수의 인증 수단을 병행한 점에서 피고 은행은 대출 신청이 원고의 의사에 기한 것임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보아 전자문서인 신용대출 신청확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의 법률효과가 그 명의인 원고에게 유효하게 귀속된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을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