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이어지는 긴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 거품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도매시장 온라인 거래 확대 △산지 직송 체계 강화 △중간 마진 축소를 위한 공동구매 플랫폼 확대 △농산물 가격 정보를 소비자에게 실시간 제공하는 ‘투명한 유통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산지-소비지 직거래를 활성화해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농협, 수협 등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 물류망’을 확대해 물류비 절감을 도모하고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수수료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방안도 병행한다.
그러나 물가 상승을 유통구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얼마 전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유통구조는 5단계에서 2~3단계로 이미 많이 줄였다”고 했다. 첫째, 농업 생산비 자체가 상승하고 있다. 인건비·비료·사룟값이 국제 원자재 가격과 맞물려 오르면서 애초에 산지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둘째,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불안정이 가격 변동성을 키운다. 폭염·폭우·한파로 공급이 줄면 도매시장 가격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셋째, 소비자의 구매 패턴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대형마트·편의점 중심의 소비는 추가 비용을 불러오며 프리미엄 농식품 수요 확대도 장바구니 부담을 키운다.
여기에 국제 비교를 살펴보면 문제의 복합성이 더 분명해진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농산물 유통 단계가 우리보다 길지만, 생산성 향상과 협동조합의 대규모 직거래 시스템 덕분에 소비자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더 쉽게 얘기해서 온라인도매시장 거래가 100%가 된다면 가격이 내려갈 수 있을까. 결국, 유통 개혁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 대통령이 지적했듯, 고물가는 취약계층에 더 큰 충격을 준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단순한 유통 단계 축소를 넘어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가격 안정으로 맞춰져야 한다. 예컨대 △취약계층에 대한 식품 바우처 지원 △정부비축물량 방출의 신속화 △지역 단위 직거래 장터 지원과 같은 병행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이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농가 생산성 제고와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생산-물류-유통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농업의 생산성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스마트팜 확산, 농산물 빅데이터 기반의 수급 관리, 탄소중립을 고려한 친환경 물류망 구축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유통구조 개혁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OECD 대비 50% 비싼 장바구니 물가’라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가격 불안의 근본 요인인 생산비·공급 리스크·소비 패턴까지 함께 다뤄야만 ‘민생 안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유통구조 개혁은 물가 안정의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물가 안정은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에서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