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 ·모험자본 '마중물' 역할
"회수시장 활성화 필요" 제언도

정부가 벤처 활성화와 모험자본 확대를 연이어 주문하면서 공제회 등 '큰 손'들이 대규모 출자 사업에 나서고 있다. 수천억 원대 블라인드펀드(투자처 미확정 펀드)가 잇따라 조성되면서 민간 자본시장의 혁신기업 투자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사모펀드(PE)와 벤처캐피털(VC) 출자 사업 공고를 낼 예정이다. 출자액은 지난해 PE 1600억 원, VC 1050억원 수준에서 올해는 총 3000억 원 규모로 증액하고, 특히 VC 중심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중앙회(노란우산공제)는 올해 VC 출자금을 지난해(1100억 원)보다 700억 원 늘어난 1800억 원으로 정했다. 일반 리그 1200억 원, 소형 리그 600억 원으로 기업 규모 별 투자 그룹을 세분화해 진행한다.
군인공제회는 지난달 PE와 VC를 대상으로 4800억 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VC 출자액을 14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00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 이번 정기 출자에서는 총 10개 운용사를 선정해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총회연금재단도 지난해 전체 출자 규모 500억 원에서 올해는 1000억 원으로 두 배 늘렸다. 출자 포트폴리오는 PE, 사모대출펀드(PDF), VC 분야를 모두 아우른다. 한국성장금융도 기술혁신전문펀드 6호 출자액을 1600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해 집행된 5호 펀드(총 870억 원)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로 커졌다.
무역보험기금도 출범 24년 만에 처음으로 벤처펀드 출자에 참여해 모태펀드와 함께 400억 원 규모이 모(母)펀드를 조성, 세컨더리 자(子)펀드 운용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는 6년 만에 PE 블라인드 출자 사업에 나섰다. 총 2000억 원 규모로 진행되며 추가로 1500억 원 규모의 공동투자도 진행할 계획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중 2000억 원 규모 PE 블라인드 출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벤처투자 확대 기조가 대형 투자 기관들의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벤처투자 40조 원 달성을 국정 목표로 내걸고, 모태펀드 예산을 올해 9896억 원에서 내년 2조 원 가량으로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금융당국도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시장에 모험자본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을 담당할 증권사들에 모험자본을 의무적으로 25% 이상 공급해야는 조건을 제시한 게 대표적이다.
VC 출자 확대로 국내 벤처 시장에 실질적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지난 수년 동안 글로벌 금리 급등과 경기 둔화, 기관 투자가의 출자 위축 등이 벤처펀드 결성 지연과 후속 투자 위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주요 LP들이 동시에 자금을 풀어주기에 그간 자본 유입이 더뎠던 벤처 시장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VC 투자 선순환을 유지하려면 투자만큼 중요한 회수 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침체된 기업공개(IPO) 시장 등 회수 채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