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KPI 대대적 손질
민원·보이스피싱 대응 강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강화를 위해 전 업권 최고경영진을 한자리에 모았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드러난 내부통제 부실과 단기 성과 위주의 영업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전 업권 간담회를 열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전반을 소비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9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찬진 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은행·보험·증권·여신전문·저축은행 등 19개 주요 금융회사 대표들과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관련 전 금융권 간담회’를 가졌다. 이 원장 취임 이후 업권별로 진행된 간담회와 별도로 소비자보호만을 주제로 전 업권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자리가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이 원장은 모두발언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단기 성과에 치중한 불완전판매, 내부통제 미흡, 소비자보호를 비용으로만 보는 경영 인식이 만연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지난해 홍콩 ELS 사태는 취약한 지배구조가 불러온 대표적 사례로 단 한 번의 사고로 막대한 비용과 소비자 신뢰 상실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원장은 “소비자보호 거버넌스는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 리스크를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핵심 경영 전략”이라며 “금융산업의 성장과 안정, 그리고 지속 가능한 이익을 위해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감원은 금융회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지배구조 기준으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Best Practice)’을 공개했다. 모범관행에는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의 실질적 운영 △CCO(소비자보호 담당임원)와 전담부서의 독립성·전문성 확보 △소비자보호 중심 성과보상체계(KPI) 설계·평가 △금융지주회사 차원의 총괄 관리·감독 역할 강화 등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CCO 임기를 최소 2년 이상 보장하고 영업·상품개발 등 이해상충 직무 겸직을 금지했으며 KPI에는 불완전판매율·민원 건수·보이스피싱 방지 실적 등 소비자보호 지표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했다. KPI의 설계 및 평가 과정에서 CCO에게 거부권(veto)을 부여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소비자보호부서 운영 기준도 강화됐다. 회사 규모와 영업전략, 소비자보호 리스크를 감안해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전문학위·자격증 보유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한다. 최소 3년 이상 전담 근무로 업무연속성을 확보하고 중요한 민원·분쟁은 내부통제위원회에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 전반의 소비자보호 수준을 관리하고 평가 및 점검 결과를 공유하며 협의회를 운영하는 등 총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민원·분쟁과 금융범죄 대응 역량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최근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 건수는 2022년 8만7000건에서 2023년 9만4000건(7.7% 증가), 2024년 11만6000건(24% 증가)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 원장은 “금감원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금융권 스스로 상품 약관과 판매 관행을 개선해 민원을 사전에 예방하고, 공정하고 신속한 민원 처리를 위한 자체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확산되는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보험사기 등 민생금융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이상거래 탐지시스템 고도화, 보이스피싱 문진 강화 등 사전 예방체계 구축도 당부했다.
참석한 금융회사 CEO들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소비자 신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강화가 필수”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전문인력 확충, 조직 내 소비자보호 문화 정착, 우수회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건의했다. 금감원은 업계 의견을 검토해 향후 감독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협력해 관련 법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2월 홍콩 ELS 사태 후속조치로 금융소비자보호법 및 감독규정 개정안이 예고된 상태로 KPI 개정 시 소비자보호 부서의 사전 합의권 및 개선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또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에서 거버넌스 항목의 평가 가중치를 현행 23.4%에서 26.0%로 상향하고 지주회사의 자회사 관리 여부 등 신규 평가항목을 도입한다. 우수 평가 회사에는 직원 포상 등 인센티브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원장은 “금융산업의 혁신과 안정적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소비자 신뢰가 필수적”이라며 “최고경영진이 앞장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보호를 달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금감원도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건전한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