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가 무서워요…지하철 승객 대피시킨 그 연기 [해시태그]

입력 2025-09-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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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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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가득 메운 연기. 놀란 사람들의 비명과 대피 방송. 사정없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관계자들이 들고나온 가방을 바라봤는데요. 연기의 출처는 작은 가방 속 더 작은 보조배터리였습니다.

주머니 속 보조배터리, 사람 사이를 지나는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에서 마주하는 편리한 이 리튬배터리가 ‘일상의 공포’가 되고 있죠.

지난달 27일 밤,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촌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객실 안에서 갑자기 흰 연기가 피어올랐는데요. 한 외국인 승객이 소지한 보조배터리에서 시작된 거였죠. 그래도 승객들은 침착하게 기관사에게 알리고 소화기를 잡아 불길 확산을 막았는데요. 다행히 불길은 번지지 않았지만 ‘불안’은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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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인 1일 오후에는 지하철 2·6호선 합정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환승을 기다리던 승객의 리튬배터리(오토바이용 추정)에서 연기가 솟구쳐 이내 플랫폼과 역사 전체로 퍼지며 벽을 그을렸습니다. 소방관들은 승객과 상인들을 대피시키고 뜨거워진 배터리를 수조에 담가 밖으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지하철은 30분 넘게 무정차 통과를 이어갔는데요. 일주일도 안 돼 발생한 열차 내 배터리 화재 사고에 우려는 더 커졌죠.

지하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올해 1월 김해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앞둔 에어부산 여객기 선반에서도 보조배터리에서 연기가 발생해 탑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요. 미국, 유럽, 호주에서도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 화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달 노모와 큰아들이 숨지고 작은아들이 크게 다친 부산 북구 만덕동 아파트 화재는 전기 스쿠터 리튬이온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죠.

소방청 집계(2019~2023년)만 봐도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리튬배터리 화재는 678건. 2020년 98건에서 2024년 117건으로 증가했는데요. 그중 전동킥보드가 485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고 전기자전거 111건, 휴대전화 41건, 전기 오토바이 31건, 전자담배 10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7월 13일 화재가 발생해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부산 북구 만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찰과 국과수 소방당국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13일 화재가 발생해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부산 북구 만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찰과 국과수 소방당국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사고가 왜 잦은 걸까요? 리튬배터리는 고에너지 밀도로 작은 부피에 큰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내부 단락이나 외부 충격, 과충전이 발생하면 ‘열폭주(thermal runaway)’라는 현상이 일어나는데요. 그렇게 되면 통제 불능의 화학반응이 순식간에 폭발적 열과 가스를 뿜어내며 불꽃으로 이어집니다. 전해액이 가연성이기 때문에 불길은 더욱 빠르게 번지게 되죠.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화재 원인의 절반 이상이 과충전인데요. 충전이 끝나도 플러그를 뽑지 않거나, 침대·소파 위에서 방치하는 습관이 대표적이죠. 멀티탭을 통해 고용량 배터리를 충전하다 불이 난 경우도 많습니다. 자전거 배터리를 떨어뜨려 화재가 발생하거나 침대 위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다 발화된 적도 여럿 있는데요. 혹시나 하는 순간이 곧 사고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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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가 밀폐된 공간에서는 공포로 번지는데요. 지하철 객실이나 항공기, 공항처럼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는 작은 연기도 대피 소동으로 이어지죠. 이촌역과 합정역 모두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지만 수백 명이 동시에 몰리며 2차 사고 위험도 나왔는데요. 특히 리튬배터리 화재는 일반 소화기로 진화하기가 어려운데요. 합정역에서 소방관들이 수조에 담가 진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온을 식히고 반응을 차단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죠.

항공기 내 사고는 더욱 치명적인데요. FAA(미국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2년까지는 357건의 리튬배터리 연기·화재·고온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이런 위험 때문에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보조배터리의 기내 반입 규정을 엄격히 두고 있죠. 100Wh 이하는 휴대할 수 있지만 160Wh를 초과하면 아예 기내 반입이 금지됩니다. 국토교통부도 3월 시행했던 보조배터리 기내 안전관리 대책을 보완해 다음 달 1일부터 새 지침을 적용할 계획인데요. 비닐봉투 대신 절연테이프를 제공하고 모든 항공기에 격리보관백을 의무 탑재하는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지하철과 열차에서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 기기의 반입을 금지하는 규제를 추진 중이고요. 뉴욕시는 전기자전거와 스쿠터 화재가 급증하자 배터리 인증제를 강화했습니다. 영국도 관련 화재가 2020년 77건에서 2022년 227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자 대응책 마련에 나섰죠.


(사진제공=원주소방서)
(사진제공=원주소방서)


일단 사용자들의 안전 수칙 이행이 중요한데요. 소방청이 강조한 수칙을 보면 우선 배터리와 충전기는 반드시 KC 인증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인증받지 않은 값싼 제품은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죠. 사용 중 타는 냄새가 나거나 외형이 부풀거나 과열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전문 수리업체에 점검을 맡겨야 하는데요.

충전 습관도 중요합니다. 충전이 완료되면 플러그를 뽑아 전원을 차단하고 외출이나 수면 중 장시간 충전은 피해야 하죠. 특히 현관문이나 비상구 주변에서 충전하는 것은 화재 시 대피로를 막아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 절대 금물입니다. 충전은 통풍이 잘되고 가연물이 없는 곳에서 이뤄져야 하죠. 보관은 직사광선과 습기를 피해 서늘한 곳에서, 여름철 뜨거운 차량 내부나 겨울철 영하의 실외 보관은 위험합니다. 폐기도 마찬가지인데요.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단자를 절연테이프로 감싼 뒤, 지자체 수거함이나 제조사 회수 경로를 통해 처리해야 화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면 운반 과정에서 파손돼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권고에 그친 대책인데요. 반입 금지나 인증제 의무화 등의 규제 움직임은 아직 부족하죠. 이촌역과 합정역에서 발생한 연기가 큰 재난의 예고편이 되지 않도록, 편리함이 불안으로 바뀌는 이 순간을 주의해야 할 텐데요. 지하철이나 항공기처럼 밀폐된 대중교통시설에서의 대용량 배터리 휴대 제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때죠. 그 연기가 일상을 뒤덮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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