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혀질 것 같지 않았던 앙숙이 ‘환한 웃음’으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이들에게 대립이 아닌 찐 웃음을 선사해 준 건 다름 아닌 ‘금융치료’였는데요.
넷플릭스와 영화관,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앙숙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습니다. 넷플릭스는 플랫폼 스르밍 철칙을 세워왔고 극장 체인들은 그런 넷플릭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는데요.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이 모든 긴장을 단숨에 깨버렸죠.

스트리밍 1위, 음원 차트 석권에 이어 단 이틀간의 싱어롱(공연이나 영화 속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것) 이벤트로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찍어버렸는데요. 단번에 쏟아진 수익. 넷플릭스도 웃고, 영화관도 웃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넷플릭스는 창사 이래 극장 개봉보다는 자사 플랫폼 공개를 우선해왔는데요. 이 때문에 극장 업계와 오랫동안 협업이 쉽지 않았죠.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등이 극장에 걸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카데미 출품 요건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 상영’에 불과했습니다. 관객이 몰려드는 멀티플렉스에서 정식으로 만나긴 어려웠는데요.
이 판도를 깨뜨린 건 예상 밖의 작품이었습니다. K팝 아이돌 그룹이 헌터로 나서 악령을 물리친다는 다소 엉뚱한 설정의 애니메이션 케데헌. 공개 직후 OST ‘골든(Golden)’이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르더니 영화 자체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넷플릭스는 결국 팬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23~24일, 단 이틀간 미국과 캐나다 1600~1700개 극장에서 싱어롱 상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는데요. 뉴욕과 LA 상영관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습니다. 극장은 콘서트장으로 변신했는데요.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었죠. 팬들은 떼창을 하고, 응원봉을 흔들고, 대사에 몰입했는데요. 관객이 직접 공연자가 되는 구조. 이틀 만에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적 같은 결과는 이렇게 만들어졌죠. AP와 헐리우드 리포터는 “스트리밍의 인기가 극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넷플릭스 역사상 첫 박스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을 달아줬는데요.
흥행 수익도 만만치 않았죠. AP에 따르면 케데헌은 단 이틀간 북미에서 1600만~1800만 달러(약 220억~250억 원)를 벌어들였는데요. 보통 극장 수익은 절반 정도가 극장 체인에 나머지가 배급사에 돌아갑니다. 즉 넷플릭스와 극장 모두 100억 원 이상을 챙긴 셈인데요. 넷플릭스는 극장 상영을 기타 수익으로 분류하며 수익률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외신들도 이틀만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의 이익을 거뒀다고 보도했죠. 스트리밍 최강자와 극장이 동시에 ‘금융치료’를 받은 순간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결과는 이미 예상했던 바죠. 케데헌은 스트리밍에서도 무시무시했는데요. 넷플릭스 공식 발표에 따르면 공개 9주 만에 2억3600만 뷰를 기록하며 영어 영화 부문 역대 1위에 올랐습니다. 드웨인 존슨과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했던 ‘레드 노티스(2억 3090만)’를 제친 건데요. 전체 콘텐츠 기준으로도 ‘오징어 게임 시즌1’, ‘웬즈데이’에 이어 3위 기록이죠. 아직 집계 기간이 남아 있어 전체 1위 도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스트리밍 1위, 극장 1위. ‘더블 크라운’을 달성하게 한 건 음악의 힘이 큰데요. 주제곡 ‘Golden’은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르며 케데헌의 상징이 됐죠. 방탄소년단(BTS) 이후 K팝이 2주 이상 정상에 오른 건 처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OST 네 곡이 동시에 빌보드 톱10에 이름을 올렸죠. ‘유어 아이돌(Your Idol)’, ‘소다 팝(Soda Pop)’,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까지 나란히 4위, 5위, 10위에 진입했습니다. 한 작품 OST 네 곡이 동시에 톱10에 든 건 빌보드 역사상 최초죠.

빌보드 곡을 앞세운 싱어롱 현장은 그야말로 ‘열광’ 자체였는데요. 상영관에서는 영화 대사 한 줄 한 줄마다 환호성이 터졌는데요. “진우, 가지 마!”라는 외침이 울려 퍼지고, 주인공이 희생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속출했죠. 사자보이즈 멤버 진우의 소멸 순간에는 격한 외침이 쏟아지며 “진우 유가족분들이세요?”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중간 통로에서는 아이들이 춤을 추며 달려 나왔고 뒷좌석은 젊은 세대의 스탠딩 존이 됐습니다. 관객들은 ‘이것이 진짜 싱어롱’이라며 격한 만족을 드러냈는데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깨를 들썩인 완벽한 상영이었다고 입을 모았죠.
뜨거운 인기는 한국으로도 번졌는데요. 부산국제영화제가 국내 최초로 케데헌 싱어롱 상영을 확정했죠.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열릴 이번 상영은 한국 팬들에게도 ‘떼창’을 선사할 전망입니다.
극장 체인도 환호했습니다. AMC는 불참했지만, 리갈, 시네마크, 알라모 등 주요 체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했는데요. 시네마크는 아예 자체 홍보에 나서 “추가 상영 요청이 폭주한다”고 알렸죠. 그동안 스트리밍과 대립각을 세우던 극장이 넷플릭스 덕에 돈을 번 셈인데요. 그야말로 ‘금융치료’ 성공이었죠.

케데헌은 스트리밍, 극장, OST 수익까지 삼박자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거기다 스트리밍과 극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보여줬죠. 이벤트 상영에 대한 분위기를 따뜻하게 했는데요. 극장도 이제 안정적인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이라면 협력에 나설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거죠. 케데헌은 K콘텐츠가 글로벌 티핑포인트(작은 변화가 임계점을 넘어 급격한 확산이나 전환을 일으키는 현상)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앙숙까지 화해시킨 케데헌. 이 말도 안 되는 인기의 다음 페이지는 아카데미가 될 전망인데요. 그 격한 정상을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