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 자사주(자기주식) 제도의 개선 방향을 두고 국회와 학계, 업계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국회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는 관행을 차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기업의 자금조달이나 임직원 보상 수단을 지나치게 제약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사주 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서 예외적 활용을 허용하는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며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상장사들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어 소각하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려는 유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지배력 강화나 우호 세력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 23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자사주를 처분한 사례는 총 264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임직원 보상 목적이 171건으로 가장 많았고, 특정인 대상 처분이 63건, 회사 기금 출연이 20건, 시장 매각은 10건으로 집계됐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ESG운용부문 대표는 태광산업 사례를 통해 제도의 허점을 집중 조명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24.41%)을 기초로 3186억 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려다 논란을 빚었다. 이 대표는 “자사주 장기 보유와 무분별한 처분이 제도의 구멍을 드러낸 사례”라며 “상법 개정으로 강화된 3% 룰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태광산업은 20년 넘게 자사주를 방치하다가 이사회 결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대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다”며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사실상 지배력 경쟁에서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자기자본비용(COE)을 고려하지 않은 경영 관행과 낮은 배당 성향이 기업 저평가를 고착화했다”며 “자사주 매입은 소각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준범 변호사는 자사주 제도가 ‘신뢰 상실’ 문제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취득 단계에서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활용 단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돌려쓰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면 애초부터 취득 목적에 명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임직원 보상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신주를 소량 발행하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자사주를 보관했다가 보상 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제도 취지와 무관한 기업 편의적 활용이라는 지적이다.
천 변호사는 “미국·영국·독일·일본은 자사주 권리를 제한하거나 소각 처리해 주주 보호 장치를 두텁게 마련하고 있지만, 한국은 제3자 배정 요건이 사실상 무제한 허용돼 주주 권익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자사주 보고서를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며 “1% 이상 보유 시 구체적 소각 계획과 보상 일정을 명시하도록 공시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 측은 소각 의무화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경영 활동 제약을 우려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자사주 취득 자체만으로도 주주환원 효과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며 “소각 의무화는 회계 처리나 자본 구조와 충돌할 수 있다. 특히 임직원 보상이나 인수·합병(M&A) 대가 지급 등 실무적 활용 수단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과장은 “지난해부터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의 5%를 넘는 회사에 대해 공시를 의무화했지만, 특정 주주 지배력 확대를 위한 남용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며 “직접적 규율 강화는 주주 신뢰 제고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기업 경영 자율성을 저하시킬 우려도 있다. 각국 사례를 참고해 균형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은 이날 통과된 2차 상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기업은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있다”며 “자사주 처분 공정화 논의도 마찬가지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시장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