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과징금 가능성에 산정기준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인 국고채 담합 사건 결과가 이르면 연내 나올 예정인 가운데 국고채전문딜러(PD)사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가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하면서, 각 회사당 많게는 1조 원에서 적게는 수천억 원의 ‘과징금 폭탄’이 매겨질 수 있어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8일까지 15곳의 PD사들로부터 국고채 금리 담합 사건 관련 의견서를 제출받았다. 의견서는 공정위가 제재 심의를 열기 전 마지막으로 당사자들의 소명을 듣는 절차다. 의견서를 낸 곳은 은행 5곳(KB국민·기업·NH농협·산업·하나)과 증권사 10곳(교보·대신·메리츠·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NH투자·KB·키움·한국투자)이다.
앞서 3월 공정위는 국고채 입찰 담합 혐의와 관련해 이들 15개 PD사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바 있다. 심사보고서란 일종의 ‘기소장’으로, 위법 사실과 법 위반 조항, 처분 의견 등이 담긴다.
보고서에 따르면 PD사들은 수년간 국고채 입찰 전 금리 정보를 사전 공유하거나 금리 하한선을 설정해 응찰 경쟁을 제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가 보고서에 기재한 국고채 관련 매출액은 76조 원에 달하고, 이에 따른 과징금은 최대 1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관련 과징금은 매출액의 최대 20%까지이거나 정액으로는 최대 40억 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심사보고서를 통해 받아 든 과징금 규모는 국고채 인수액이 큰 대형사는 1조 원이 넘었고, 그 외 중소형사도 수천억 원에 달했다. 중견급으로 분류되는 한 PD사의 경우 4000억 원대 과징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규모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쿠팡에 부과된 과징금 1628억 원은 당시 국내 단일 기업에 대한 역대 최고액이었다. 해외 기업까지 포함하면 2016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퀄컴에 부과된 1조311억 원이 최고였지만 퀄컴은 당시 시가총액 2400억 달러(원화 환산 278조5200억 원)가 넘는 글로벌기업이었다. 2019년 외국파생상품 거래 담합 혐의로 JP모간체이스은행·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외국계은행 6곳이 받은 과징금도 총 7억 원을 넘지 못했다.
이번 과징금 규모가 유독 큰 이유는 산정 방식 때문이다. 공정위는 PD사들의 국고채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이 아니라, 인수총액 전체를 매출로 간주해 과징금을 계산했다.
PD사들이 특히 반발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업계는 이같은 계산이 실질 수익 구조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이번 제재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 일부 PD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PD사 관계자는 “국고채는 (한번) 발행 단위가 수조 원대로 크지만, 이로 인한 순수익은 억대에 그친다”며 “영업이익이 1조 원 남짓인 증권사에 수조 원대 과징금은 과도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런 산술방식은 금융권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사보고서에 구체적인 부당이득 규모와 산정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국고채 입찰 담합으로 발생한 국고 손실액이 정확히 산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관련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고 있지 않는데 대한 서운함도 에둘러 내비쳤다. 또 다른 PD사 관계자는 “PD 업무를 반납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결론이 뒤집힌 전례도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공정위는 2012년 5대 은행과 SC제일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혐의를 4년간 대대적으로 조사했으나,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편, 공정위는 올 연말 전원회의를 열고 위법성 여부와 과징금 수위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