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차등은 형평성·평등권 침해한다는 비판에..."적절치 않아"

대다수 전문가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도매'와 '소매'에 관한 입장은 엇갈렸다. 이들은 사회적 갈등을 줄이려면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에 대해 대부분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소매와 도매를 나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도매'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은 완전히 반대하고, '소매'는 방향은 바람직하나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도매는 결국 비수도권 요금을 깎겠다는 건데 잘못하면 발전사 입장에선 날벼락"이라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구매 가격을 깎겠다고 하면 많은 발전사가 적자에 빠질 수도 있고 국가 전체의 전력 공급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소매'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을 우선으로 하고 도매도 점차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소매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매의 경우 예를 들어 송전망이 많이 필요한 곳에는 부담 크니까 가격을 낮게 해주고 수도권은 높게 하자는 게 전 세계 트렌드"라고 덧붙였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전국이 같다. 장기적으로 수도권이 전기요금을 많이 내고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은 적게 내는 게 맞다. 그러나 소매 전기요금 차등화는 내년 지자체 선거가 변수"라고 말했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작년부터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시행되어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정치적 영향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 등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주지역만으로 전기요금을 차등하는 건 형평성·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형평성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손 교수는 "지나친 비유일 수 있지만, 강남에 사는 사람이나 경북에 사는 사람이나 아파트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건 평등권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처럼 송전망이 많으면 상관없지만, 지금은 송전망이 부족해서 난리"라며 "차등 적용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평등권까지 나오면 (사회적 합의가) 어렵지만, '농산물도 산지가 더 싸다'라는 원리로 보면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를 도입하면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는 '금액'이 변수라고 했다.
유 교수는 "전기요금 10~20원 깎아줘선 이전 못 한다. 새로 공장 지을 때 비수도권이 싸면 거기 짓는 걸 고려해볼 순 있겠지만, 기존 공장이 옮겨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이전을 생각할 때는 인재유치도 고민한다"며 "전기요금만 보고 결정할 건 아니고 정주 여건 등도 함께 보기 때문에 10~20원 정도 깎아줘선 공장 이전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이 1kWh당 190원 정도 하는데 공장을 이전하려면 적어도 60~70원은 깎아줘야 하지만 현재 한전이 이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냐는 회의적"이라며 "결국 60~70원 수준으로 깎아주지 않으면 공장을 옮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핵심은 수도권과 지역의 요금 차이가 얼마나 크냐"라며 "단순히 1~2원 가지고는 기업들의 수도권 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보다 더 많이 차이가 나야지 기대해볼 수 있는 효과"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설계할 때는 지역 구분, 생산원가 반영 등 다각도를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교수는 "지역을 구분할 때 굉장히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수도권에 포함된 인천은 전력 자급률이 100%가 넘는다. 인천은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더 많아서 발전소를 없애라는 상황인데 전기요금까지 올라가면 더 강력하게 반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나눠 차등하는 게 만만치 않다. 광역지자체별로 전력자급률에 따라 차이를 두는 방안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경기도 요금은 많이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가 산업 경쟁력을 기반을 둔 기업이 많이 자리 잡았다"며 "전기요금 오르면 국가 산업 경쟁력의 쇠퇴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교수는 "지역 구분을 어떻게 하는 게 맞을지, 낮춰주는 지역이 있으면 올려주는 지역이 있을지, 낮춰만 줄지 등을 고민해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내년에 지자체 선거 있는 상황에서 어느 지자체가 더 내겠다고 하겠냐"며 "그렇다고 수도권이니까 요금을 더 많이 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설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막연하게 부자니까, 수도권에 사니까 더 내라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을 이해시킬 만한 금전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가스요금 차등제를 시행한다는지, 일자리 창출을 한다든지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없으면 해당 지역 주민들을 이해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아니라 전기를 쓰는 소비자가 부과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며 "서민 물가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전기요금도 많이 오르지 못하게 하면 결국 한전 적자로 이어진다. 한전 적자는 곧 국가 적자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생산원가를 잘 반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송전선로가 길면 긴 쪽에서 부담해야 하니까 원가 기준이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