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에너지 구매를 포함한 통상 협상에 전격 합의한 가운데 협상 쟁점으로 거론돼온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과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는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들 사안이 향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혀 사실상 ‘2라운드’ 논의가 예고된 상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에서 “온플법은 협상 단계에서는 있었지만 이번에 최종 테이블에는 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AI 패권 강화를 위한 ‘AI 액션 플랜’을 발표한 이후, 미국 측이 AI(인공지능) 칩이나 GPU(그래픽처리장치) 칩 구매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김 실장은 이에 대해서도 “해당 요구는 없었다”고 선을 그으며 디지털 분야에서의 양보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 제한 정책, 해외 콘텐츠 공급자에 대한 네트워크 사용료(망사용료) 부과 법안, 정밀 지도 반출 제한 등을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디지털 개방이 관세 협상 카드로 꺼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는 디지털 주권 보호 차원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타협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 실장은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에 대해 “제일 일찍 논의를 많이 한 분야인데 이번에는 통상 위주로 신속하게 급진전이 되면서 그런 부분은 우리가 방어를 계속 했다”며 “그쪽에 대한 추가적인 우리 앙보, 이런 것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단 관련 논의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정밀 지도 반출을 비롯한 안보 분야에 대해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협상 결과 발표에서 디지털 개방 관련 내용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논의는 정상급 외교 테이블로 이동한 셈이다.
최근 미국이 AI 액션플랜을 통해 동맹국에 자국산 기술 도입을 압박하면서 온플법·망 사용료 등 디지털 무역장벽 이슈가 AI 협력이나 기술 협정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플랫폼 업계에서도 이 같은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안보 자체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났지만 사실 협상이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AI 액션플랜을 통해 AI 기술까지 통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만큼 관세를 넘어선 새로운 압박이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어 AI 수출, 인프라 개방, 디지털 주권 등 민감 사안에서 한국은 계속 시험대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도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를 안보와 산업 양측면에서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오는 8월 11일 열릴 지도 반출 협의체에서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