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다못한 촬영 감독은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스테디캠(Steadicam)을 벗어던지며 말한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해도 너무하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촬영장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으로 변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두 사람은 촬영장 근처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각자 서운한 점을 토로한다. 연출은 "촬영 중에 그렇게 카메라를 내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느냐"라고 항의한다. 그러자 촬영 감독이 말한다. "말 한마디야!"
과거 촬영 감독은 스테디캠을 메고 사막에서 10시간도 넘게 굴렀다. 그런 그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한 이유는 연출의 태도 때문이다. "선배님, 힘드신데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가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군소리 없이 일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연출은 자신의 일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동료가 체력이 달려서 스테디캠을 벗어던진 게 아니라 자신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그랬다는 걸 깨달아서다.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고 먹으면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말법이자 반응이라는 얘기다. 무거운 스테디캠을 짊어지고 뛰어다니는 일이 촬영 감독에게 부여된 당연한 업무일지라도 그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동료 사이의 예의이자 우정이다. 그걸 모르면 함께 일할 수 없다. 촬영 감독은 연출의 부하가 아니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논란이 사실이라면 정말 아연할 정도다. 그는 청문회에서 발달 장애가 있는 자식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가 함부로 대했던 수많은 보좌진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아들이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가족 정책을 총괄하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라면 말이다.
국회의원이 지시하면 보좌진은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왜곡된 권력 의식이 자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와 강 후보자의 발목을 잡았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부하가 아니다. 그저 함께 일하는 동료이고, 의정 활동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숨은 은인이며, 지난해 별세한 가수 김민기가 자처했던 소중한 '뒷것'이다. 강 후보자는 그런 사람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 대신 참담하게도 자신의 사적 업무를 지시했다.
챗GPT도 보좌진은 부하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일을 돕는 '협력자'의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보좌진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적 인력이기 때문에 공무만 수행해야 한다고. 사적 지시는 보좌진의 업무 외 활동이라며 예로 '쓰레기 버리기'를 언급한다. 이미 기자 말고도 누군가가 질문한 모양이다. 챗GPT도 아는 것을 강 후보자도 잘 알았으면 좋겠다.
송석주 기자 ss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