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없지만 제삼자 넘기면 실질적 우호지분
지배력 약화 시 행동주의 타깃·경영권 분쟁 위험↑

자사주 의무 소각이 현실화하면 경영권 방어에 비상등이 켜질 기업이 100개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결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으로 최대주주의 ‘우호지분’ 역할을 해 온 자사주가 사라지면 최대주주의 특별결의 저지선인 지분율 3분의 1(33.3%) 지배력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이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15일 신한투자증권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장회사 중 지난 9일 기준 보유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할 경우 최대주주 지배력이 33.3% 미만이 되는 기업은 총 871개사로 나타났다. 이는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현재 기준(776개사)보다 95개사(12.2%) 증가한 수치다.
구간별로 보면 자사주 소각 시 대주주 지배력이 5% 미만인 곳은 19개사에서 20개사로 늘었다. 대주주 지배력이 5~10% 미만은 47개사에서 59개사로, 10~25% 미만은 338개에서 382개사로 증가했다. 25~33.3% 미만은 372개사에서 410개사로 늘어났다. 반면 지배력이 33.3%가 넘는 기업 수는 1758개사에서 1663개사로 감소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력’이란 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 최대주주가 우호적으로 통제 가능한 지분의 비율을 의미한다. 현재 기준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최대주주 보통주와 자사주 보통주를 더해 우호지분으로 계산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세력은 제삼자에게 매각되거나 자사주끼리 교환(주식스와프)할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기업은 우호세력이나 계열사에 자사주를 넘겨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쓰는 경우가 있어 ‘잠재적 우호지분’으로 여겨져 왔다.
자사주를 모두 소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자사주 보유량 많은 기업들은 발행주식 총수가 줄어드는 동시에 자사주만큼의 우호지분이 사라져 실질적으로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축소된다. 행동주의 펀드나 외부 주주의 개입 가능성도 커진다. 경영권을 둘러싼 외부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사주는 주가 관리 수단이자 경영권 방어용 실탄 역할을 해 왔지만, 소각이 의무화되면 그 자체로 경영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특히 지분율이 낮은 오너 기업일수록 정관 변경이나 인수·합병(M&A) 대응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