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업계도 ‘임장비’ 두고 의견 엇갈려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검토했던 임장비 도입이 속도를 내지 못한 채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소비자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데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거래량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모양새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주도했던 임장비 도입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임장은 부동산 정보를 얻기 위해 현장을 찾아 매물을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협회는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 함께 소비자 인식, 업계 수용성, 법적 제약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지만, 현재까지 정치권이나 정부 등 외부 기관과의 공식 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임장의 유료화, 즉 임장비는 최근 부동산 동호회 회원을 중심으로 실제 계약을 하지 않고 매물만 보는 ‘임장 크루’가 성행하면서 나온 일종의 대책이다. 단순한 시세 파악이나 콘텐츠 제작을 목적으로 다수의 인원이 중개사무소를 방문하면서 공인중개사들이 실거래 가능성이 낮은 고객에게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크루가 자체적으로 비용을 걷어가는 구조에서 정작 중개사는 무상 노동만 요구받는 현실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공인중개사들의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김종호 공인중개사협회장은 4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임장 기본 보수제’를 언급했고, 추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가 중개사무소를 통해 매물을 둘러보면 일정 금액의 임장 비용을 사전에 지불하고, 실제 계약 성사 시 이 비용을 중개 보수에서 차감하는 식의 구상이다. 현행 공인중개사법 제32조에 따르면 중개사는 거래가 성립된 경우에만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계약 성사 전 상담이나 매물 안내에 대한 별도 비용 청구는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어 협회는 임장 보수제 도입을 위해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임장비 도입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면서 공인중개사협회도 주춤한 분위기다. 부동산 동호회를 중심으로 “계약 체결 시 상당한 중개비를 챙기면서 이 정도 서비스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비용을 지불하는 건 ‘이중 수수료’라는 비판도 나왔다.
소비자 비판과 함께 최근 부동산 거래량이 감소 추세를 보이면서 공인중개사 업계 내부에서도 임장비 도입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거래량 감소로 가뜩이나 고객 수가 적은 지역 공인중개사의 경우 임장비 도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 규제로 앞으로도 거래량이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임장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시들해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했을 때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크게 줄었다. 2020년 12·16 대책 이후인 2021년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전월 대비 37% 감소하며 8800가구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7년 8·2 대책 때도 8월 2만2000가구에서 9월 1만4000가구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었다.
서울 성북구 한 공인중개사는 “무분별한 임장 요청은 분명 개선이 필요하지만, 상담료를 요구하는 순간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며 “오히려 부동산 직거래가 늘어날 수 있어 시장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업계 내에서는 실제 임장비를 받지 않더라도 규정은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임장비 때문에 손님이 집을 보러오는 데 장벽이 생길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며 “국민 정서와 법 개정이 함께 가야 하는 부분이라 아직 준비 단계일 뿐 구체적으로 추진한 내용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임장을 상품화하는 문화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들이 생기니 협회에서도 강경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 목적의 임장이라면 집 내부보다는 동네 분위기, 지하철역과의 거리 등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며, 구매 의사가 없는 집 내부 구조나 하자를 체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