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고 몇 달 후 사망을 하는데 그때 내가 주치의였다. 토요일 오전 업무가 끝나고 북적대던 병동에 적막감마저 감도는 시간, 하지만 그 아이는 소아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의지한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심부전에 폐렴이 악화돼 패혈증 상태였고 난 주치의로서 퇴근을 못하고 대기해야 했다.
아빠는 학교 가는 아이가 대견하다며 최선을 다하고 싶다 했지만 주치의였던 난 희망의 끈을 놓쳐버렸고,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쯤 심장마비가 왔고 어떤 처치에도 반응이 없었다. 드디어 줄 당직에서 해방이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점점 무거워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 허적허적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벌써 그 아이의 침대는 말끔히 정리돼 있었고 이름표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난 당직실에서 너 의사 맞냐는 환청에 시달렸다.
그후 40년, 그 일은 의사로서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가리켜주는 방향타였고, 항상 옳았다.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연명치료에 매달렸고,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고통들만 안겨준 끝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난 지금, 난 40년 전으로 돌아가 연명치료에 대한 범사회적인 논의를 다시 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