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반복되는 극과 극의 외침. 분명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에 머무르지만 줄어들지 않는 극명한 입장 차. 여름철마다 ‘온도’를 향한 외침은 지하철의 또 다른 누군가를 울리고 있죠.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며 더위를 호소하는 이들의 맞은편에서는 카디건까지 껴입고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여름철 지하철의 풍경이죠. 그래도 날이 날이니만큼 ‘더위’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현실입니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냉방 관련 민원은 하루 수천 건을 넘나드는데요. 한 해 30만 건 이상 접수되는 대표적인 여름철 골칫거리죠. “도대체 왜 내가 탄 지하철 칸만 더운 걸까?” 여름철마다 드는 이 의문, 정말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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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3~5월 사이 접수된 냉방 관련 민원은 28만 건을 넘겼는데요. 하루 평균 약 3000건, 전체 민원의 75%에 달하는 비중이죠. 이 엄청난 민원은 대부분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데요. 바로 오전 7~9시와 오후 6~8시. 바쁘고 예민한 출퇴근길 때죠. 지하철 온도는 이처럼 하루 중 가장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호선별로는 수송 인원이 가장 많은 2호선에 냉난방 민원(35.0%)이 집중됐죠. 7호선(20.6%)과 5호선(12.6%)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처럼 냉방 논쟁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단순한 '취향 차이' 이상이 숨어 있는데요. 바로 좌석 위치에 따른 냉기 분포의 차이입니다. 지하철은 차량 양 끝 천장에서 찬바람이 나오고, 차량 중앙부에서는 공기를 흡입하는데요. 바람이 나오지 않는 중앙부 좌석은 자연히 더 더워지게 되죠. 교통약자석 근처가 상대적으로 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 서울교통공사가 측정한 결과 같은 객실 안에서도 좌석 위치에 따라 2~4도, 많게는 6도 이상 차이가 발생했죠.

서울 지하철은 또 다른 방식으로 체감 온도 조절에 대응하고 있는데요. 바로 약냉방칸입니다. 약냉방칸은 일반 칸보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1도 높게 유지해 추위를 타는 승객들을 배려했는데요. 1호선, 3호선, 4호선은 4번과 7번 칸, 5~7호선은 4번과 5번 칸, 8호선은 3번과 4번 칸이 해당합니다. 2호선은 혼잡도가 워낙 높아 약냉방칸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는데요. 약냉방칸은 탑승 전에 열차 외부의 스티커나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앱 ‘또타지하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냉방이 약하다고 느낀다면 바로 민원을 넣기보다는 먼저 자리 이동을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인데요. 조금만 옆자리로 옮겨도 바람이 달라지는 걸 체감할 수 있죠. 더위를 특히 심하게 탄다면, 혼잡도가 큰 출퇴근길에는 미리 ‘시원한 좌석’ 출입구에 대기하는 준비성도 필요합니다. 열차의 혼잡도를 미리 확인하는 것도 좋은데요. 사람 수가 많을수록 체열로 인해 차량 온도가 더 빠르게 올라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죠. 혼잡도는 ‘또따지하철’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혼잡도가 낮은 칸을 선택하면 냉방 효과도 훨씬 크게 느껴지게 되죠.
그렇다면 서울 지하철의 에어컨은 실제로 얼마나 강력할까요? 비교적 최신형 전동차에 탑재된 에어컨의 냉방 성능은 칸당 최대 4만6000kcal/h. 이 숫자로는 체감이 어렵죠? 이 정도의 수치는 일반 가정용 에어컨의 5~10배에 해당하는데요. 여기에 라인플로우팬, 송풍기 등 냉기를 순환시키는 보조 장치들도 함께 작동합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스펙의 냉방장치도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 체열과 밀집도의 벽 앞에서는 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외부 기온, 차량 내부 온도, 혼잡도, 노선 위치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에어컨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방식의 인공지능(AI) 냉방 시스템 도입에 관한 이야기도 흘러나오는데요. 이미 일부 시내버스에는 도입돼 시범 운영 중입니다. 다만 지하철에 적용되기까지는 노선별 차량 차이, 통신 안정성 확보 등의 과제가 남아 있죠. 아직은 센서와 승무원 판단에 의한 수동-반자동 냉방 조절 체계가 주를 이루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냉방의 진짜 사각지대는 따로 있는데요. 바로 냉방 자체가 불가능한 역사들이죠. 지난해 서울교통공사 자료를 살펴보면 1~8호선 275개 역사 중 50곳에는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는데요. 이 중 반 이상이 지하 역사입니다. 남부터미널역, 경복궁역, 아현역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역도 포함됐죠. 구조적으로 설비 설치가 어렵거나, 역 전체 리모델링이 필요한 탓에 예산 문제로 수년째 방치되고 있는데요.
이래서인지 지하철에 타기 전 이미 땀 샤워를 하게 된다는 불만도 속출하죠. 공사는 이들 역사에 냉풍기를 배치해 대응에 나섰지만 불만을 잠재우기엔 부족합니다. 이런 지하철 냉방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건 승객만이 아닌데요. 이곳에서 일하는 역무원과 청소노동자들도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냉방 문제는 결국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데요. 객실 내 냉난방 취급은 개별 온도 센서에 의해 일정한 온도로 자동 조절되고 있지만, 이것으로 수백 명의 기준을 동시에 맞추긴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체감이고, 체감은 복장, 위치, 건강 상태, 혼잡도 등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결국, 해답은 완벽한 냉방이라기보단 ‘덜 불편한 여름’이 기준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완벽한 온도’라는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약냉방칸, 앱 정보, 좌석 선택 같은 작지만, 실질적인 선택은 우리의 여름을 조금 덜 덥게 만들 수는 있는데요. 양 끝 좌석에 앉은 사람이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거기에 바람이 나오는 구조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