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23일 올 3분기에 적용할 연료비조정단가를 2분기와 같게 ㎾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3분기 전기요금이 현 수준으로 동결된다는 뜻이다. 고지서의 한두 푼 차이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서민 가계로선 가슴을 쓸어내릴 소식이다. 하지만 한전 재무 부담이나 투자 수요 등을 고려하면 에너지 선심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것이 사실이니 마냥 반길 일만도 아니다.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되는 전기요금 중 연료비조정요금은 단기 에너지 가격 흐름을 반영하는 제도로, 그 계산 기준이 되는 것이 연료비조정단가다. 최근 3개월 동향만 보면 이 조정단가는 ㎾h당 6.4원 낮출 여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동결 방침을 확정했다. 전기요금을 낮출 요인보다 높일 요인이 외려 많은 현실을 살핀 절충적 선택이다. 냉방기기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철로 접어든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한전은 앞서 지난해 10월 산업용 전기요금만 소폭 인상했다.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은 2023년 5월 이후 연속 동결되고 있다. 연료비조정단가도 2022년 3분기 이후 ‘㎾h당 +5원’ 기조를 13개 분기째 이어가는 중이다. 문제는 이 현상 유지책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은 에너지 가격이 변동하면 그에 비례해 전기요금을 손봐야 한다. 하지만 한전은 ‘정치요금’으로 통하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연료비 상승분을 적자로 떠안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원전 폭주로 치명상을 입었다. 당시 충격을 덜려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한전의 10차례 인상 요구를 외면했다. 그래서 산더미처럼 쌓인 것이 적자와 부채다.
2021년 2분기부터 누적된 한전 적자가 1분기 말 기준 31조 원이다. 부채 역시 206조 원으로 불어났다. 반면 한전이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자금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전은 향후 인공지능(AI) 등으로 급증할 전력 수요를 뒷받침할 송전망 투자에 15년간 72조 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전은 투자재원 조달 방안으로 ‘경영 효율화, 원가절감 노력’ 등을 언급하지만, 공염불에 가깝다. 현실적으론 전기료를 올리거나, K-원전 경쟁력에 기대는 등의 대안이 있다. 하지만 정치 외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관련 기업들이 제대로 입을 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경선 때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폐쇄하고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국내 발전량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28%를 웃돈다. 그런 발전소의 문을 닫으려면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에너지 가성비를 획기적으로 높일 원전 산업 진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때마침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이 앞다퉈 원전 투자에 나서고 있다. K-원전 역량을 키우면 국내 전력 수급, 전기요금 문제를 두루 해결하면서 국부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국면에 전기요금 동결에나 매달려서야 되겠나. 새 정부가 원전 청사진을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