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위기서 비롯된 대만 반도체산업

입력 2025-06-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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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겸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객원교수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겸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객원교수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겸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객원교수
“대만에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수도 타이베이에 신사옥 ‘엔비디아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을 건설하겠다.”

5월 열린 아시아 최대 테크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같이 선언했다. 그는 “150여 개 대만 기업이 구축한 AI 생태계가 없었다면 엔비디아의 설계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 대만 기업이 없으면 글로벌 AI 산업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70년 전 대만은 반도체 산업조차 존재하지 않은 불모지였다. 이러한 대만이 50년 만에 반도체 산업의 중심국이 된 데는 정부의 전략적 개입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특히 공업기술연구원(ITRI) 및 신주과학단지의 설립은 대만 반도체 산업 도약의 출발점이었다.

대만 반도체 산업 발전 정책은 국가 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 초 유엔 탈퇴 등 외교적 고립과 경제 침체를 겪던 대만은 내수기반 산업 육성에 나섰고, 그중 하나가 전자산업이었다.

한 산업의 발전에는 정부의 개입 및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은 일반적으로 기술연구개발에 대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저금리 대출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생산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 정책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초기부터 반도체 생산시설에 직접 투자했고 이를 다시 사기업화해 전문경영인 주도의 운영을 유도하는 전략적 투자자 역할을 수행했다. RCA프로젝트 성공 후 비메모리 반도체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판단, VLSI(초대형집적회로) 연구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여러 해외 유학파 엔지니어들이 대만에서 칩 설계회사를 설립했는데 생산을 할 수 있는 설비가 없어서 정부에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고, UMC도 종합반도체(IDM) 회사로 확장하기 위해 정부에 생산 자원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해 정부에서는 생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공장을 설립하는데 그게 바로 TSMC이다. VLSI 연구 프로젝트는 오늘날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시킨 핵심 계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대만 정부는 협조를 하되 경영 개입을 하지 않는 일종의 벤처캐피털(VC) 역할을 수행했다. TSMC의 창립자 모리스 창 등 우수한 전문경영인을 해외에서 적극 영입하고 기술과 자금은 지원하되 운영 자율성은 철처히 보장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시장 중심 효율성과 정책 목적이 공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TSMC와 UMC는 대만 민주화 이전, 정부 주도로 설립되었지만 모두 정부 지분이 50% 미만으로 유지됐고, 이는 법률상 사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국영기업이 아닌 만큼 민첩한 의사결정이 가능했고, 전문경영인이 주도하는 구조는 글로벌 경쟁에서도 강점을 발휘했다.

TSMC는 1987년 대만 정부 주도로 설립됐지만, 당시 반도체 제조 기술이 부족했던 대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필립스를 전략적 파트너로 유치했다. 필립스는 기술과 자금을 제공했고, 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대가로 향후 TSMC 정부 지분을 인수해 필립스가 최대 51%까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다. 설립 초기부터 TSMC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려는 대만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조치였다.

대만 정부는 단순한 보조금 정책이나 세제 혜택이 아닌 기술 이전, 인재 양성, 생산 인프라 구축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을 설계한 뒤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기는 ‘기회의 설계자’로서 기능을 한 것이다. 이 같은 모델은 한국 정부가 미래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데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구조적 접근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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