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전증은 중증 질환임에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며, 치료 환경 역시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상당수 존재해 신속한 신약 도입과 효과적인 수술 치료 활성화가 절실하다. 이에 국내 전문가들은 뇌전증 환자들의 적극적인 치료 환경 개선과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20일 서울 드래곤시티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되거나 억제되면 신체 일부나 전체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련성 발작을 보이거나 의식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뇌전증 환자는 대략 30~40만 명으로 추정되며, 매년 약 2~3만 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뇌전증 치료 환경은 여전히 미흡하다. 뇌전증으로 진단된다면 약물치료를 우선 시행하지만, 환자의 약 30%가 기존 약물로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제가 필요함에도 국내 도입이 지연되거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구대림 대한뇌전증학회 총무이사(보라매병원 신경과 교수)는 “약 30%의 뇌전증 환자가 약물 난치성 뇌전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에 승인된 신약이 국내에는 도입이 늦어지는 사례가 있다. 약가 협상, 현장 의견 반영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며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과 경제성 평가 기준 개선, 정책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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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약은 국내 기업이 개발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내 품목허가는 올해 2월에서야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동아ST가 신청했다.
서대원 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세노바메이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혁신적인 뇌전증 치료제지만, 국내에는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코리아패싱’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치료제 접근에서 점점 뒤처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특정 약 하나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정가 책정과 가격 통제 중심의 제도가 글로벌 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고 성토했다.
뇌전증 수술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뇌전증 수술은 약물 난치 환자에 효과적인 치료법이지만, 실제 수술 환자 비율은 저조하다.
손영민 대한뇌전증학회 사외이사는(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내에는 총 4대의 수술로봇이 보급됐지만, 실제 활용률은 낮다. 홍보 부족, 전문팀 구성 미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의료복지 제도와 실질적 지원이다.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치료뿐 아니라 약가 부담, 의료 접근성, 취업과 교육 문제 등 복합적”이라고 짚었다.
반복발작과 뇌전증 중등도 개선 필요성도 강조됐다. 반복발작은 짧은 시간 동안 발작이 여러 번 반복돼 신체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다. 구 이사는 “반복발작은 뇌전증 환자에 심각한 위험 요인임에도 질병코드나 별도 진단명이 없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반복발작을 중증질환으로 분류하고 산정특례 확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이사장은 “현재 상황에서 학회가 수가나 약가 정책에 적극 개입하기는 어렵다. 다만 급여 기준의 용량·연령 제한은 환자 맞춤치료 흐름과 맞지 않는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허가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