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흘 전의 일이다. 여의도에서 취재원을 만난 뒤 국회의사당으로 걸어들어가던 참이었다. 가늘었던 빗방울이 서서히 굵어지더니 거센 빗줄기로 바뀌었다. 국회 앞 도로는 금세 물바다가 됐고, 물살이 일기 시작했다. 운동화 속은 물이 차 철벅였고, 물에 빠졌다 건져진 사람처럼 바지는 허벅지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고,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기까진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몸이 찝찝한 건 둘째 치고 덜컥 겁이 났다. 무섭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숨졌던 그날. 미호강 임시제방이 무너져 오송읍 지하차도에 3분 만에 흙탕물이 들어찼던 그날이 눈앞에 겹쳐졌다. 좁은 지역에 순식간에 퍼부어 내리는 호우 패턴이 잦아지고 있음을 순간 실감한 것이다. 올여름 장마가 두려워졌다.
이튿날 마침 부처 관계자와 점심을 함께 하게 돼 우려를 전했다. 정부가 침수위험지역을 분석해 매년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벅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00년·200년·5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극한 기상현상에 대한 대비가 핵심이지만, 현실적으로 재원이 부족하단 소리였다. '기후 완화'(탄소 감축)에 집중된 관심을 '기후 적응'(재난 대비)으로 끌어와야 해결될 문제란 얘기로도 들렸다.
지난 대선 기간을 떠올려봤다. 기후 관련 이슈론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 에너지믹스, 햇빛연금 등이 주되게 거론됐다. '어떻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것이냐', '탄소감축 시장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반면, 대심도 빗물터널 추가 설치, 기후재난 예측시스템 도입 등 재난대응 공약은 반짝 떠올랐다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국회와 정치권이 논의의 폭을 보다 더 넓게 가져가야 한단 지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반지하 폭우 참사가 있었던 지난 2022년 서울 강남 구룡마을을 찾은 한 국회의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기후위기 속에 이런 폭우가 안 일어나리란 법은 없다. 재난 시스템을 전면 검토할 때가 됐다." 그다음 해인 2023년, 오송 지하차도를 찾은 또 다른 국회의원도 비슷한 어록을 남겼다. "기후변화에 따라 극한 호우가 당연할 거라고 전제해야 한다. 그에 맞춰 수해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비슷한 패턴의 사고, 비슷한 패턴의 사과가 매년 반복된다. 올여름은 좀 달라질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