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누키 우동'서 작명 아이디어 얻어...출시 두 달만에 매출 20억
한국인 10명 중 6명 "라면 속 다시마 먹는다"...4명은 "국물내기만"

최근 일본의 한 온라인페이지에서 일본인 1100여 명이 참여한 한국 봉지라면 베스트 10 조사 결과가 국내에 알려져 소소하게 화제를 모았다. 조사 결과에서는 글로벌 흥행 제품으로 등극한 삼양식품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대한민국 라면 절대 강자인 농심 신라면이 100점 만점 중 각각 77.9점과 77.3점으로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라면은 바로 농심의 '너구리'(81.2점)다.
17일 농심에 따르면 너구리는 1982년 11월 출시, 40년 넘게 판매되고 있는 K-라면 대표 스테디셀러다. 첫 출시 당시 현재의 순한 맛에 해당하는 너구리우동이 출시됐고, 3개월 뒤인 1983년 2월 '얼큰한 너구리'가 추가로 나왔다. '얼큰한 매운맛'이 특징인 신라면이 1986년 첫 출시임을 고려하면 너구리가 농심 얼큰한 라면 계보의 첫 시작점이 된 셈이다. 최근 너구리는 국내 뿐 아니라 미국, 그리고 일본 MZ세대에게 높은 인기다. 특히 일본에서는 현지법인(너구리 재팬)과 의류 브랜드 레이지 블루가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등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너구리란 이름의 탄생도 일본 우동과 맞닿아 있다.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이 작명에 동참했는데, 일본 우동을 인스턴트화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통 우동은 재료 등에 따라 유부를 올린 키츠네(キツネ, 여우), 튀김 부스러기를 첨가한 타누키(タヌキ, 너구리) 등으로 분류되는데 일본 (타누키) 우동에서 명칭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 관계자는 "회장님이 일본에서 우동을 드시고 국내에선 우동 타입 제품이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제품을 만들자고 하신 것은 맞다"면서 "다만 작명에서의 연관성이 거론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너구리의 가장 큰 특징은 우동면을 닮은 굵고 통통한 면발이다. 한국 최초 둥근면으로 생산한 이 제품은 기존 라면 굵기의 2배가량 된다. 때문에 농심은 두꺼우면서도 쫄깃하고 잘 익는 면발을 만들기에 집중,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개발에 성공, 1990년대 후반까지 제품 포장지에 '면발이 굵어 조리시간이 짧다'고 안내할 정도로 농심의 자부심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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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특징은 굵은 '다시마 조각'이다. 농심 연구팀은 해물우동의 시원한 국물 맛을 구현하기 위해 상품 출시 초기부터 전남 완도산 다시마를 넣었다. 다시마는 전남 완도군 금일도에서 생산한 다시마를 납품받아 40년 넘게 사용하며 농가 상생을 이루고 있다. 너구리로 소비되는 다시마는 이 지역 연간 건다시마 생산량의 15%에 달한다. 농심은 올해도 전남 다시마 위판(경매)에 참여, 햇다시마 490톤(t)을 구매한 상태다. 이런 인연으로 2021년 신춘호 회장 별세 당시 완도군의회가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국물은 약하게 맵고 감칠맛이 특징이다. 통통한 면발, 완도산 다시마, 입맛을 돋우는 국물이 조화를 이룬 너구리는 출시 두 달 만에 2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냈고, 이듬해 1983년에는 150억 원을 돌파했다. 너구리는 국내 인기에 힘입어 보따리상에 의해 미국에 소개됐고 일본 라멘이 독차지하던 미국 시장에서 K-라면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구리를 맛본 재미동포들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함께 너구리의 독특한 맛에 매료되어 열광했다. 당시 한글을 읽지 못하는 현지인들조차 포장지에 적힌 너구리 글자를 뒤집어 읽으며 'RtA' 라면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는 뜨거운 인기를 반영한 설화(說話)다.
너구리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소비자들이 ‘다시마를 먹어야 되냐’다. 농심이 13세~40세 소비자 36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너구리에 든 다시마를 먹는다고 답했고, 나머지 4명은 국물 내기에만 사용한다고 답했다. 농심 측은 이런 식습관에 대해 "정답은 없다"며 "취향에 따라 드셔도 되고 국물만 내는 데 사용하셔도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