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30. ‘AI의 도전’ 직면한 예술계

입력 2025-06-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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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AI와 인간의 창작 구별·보호 과제로
‘기술진보·예술가치’ 법적 정비 시급

‘AI 창작’ 인정기준 두고 논란 분분
무단학습에 저작권 침해 갈등 커져
AI 도움 때는 표시의무 법제화해야

인공지능(AI) 기술은 이제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을 막론하고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모방하거나 때로는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예술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영역이라는 전통적 인식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AI와 인간의 창작을 어떻게 구분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한 전시공간에서 열린 신진 작가의 상반기 개인전은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은 듯한 질감 위에 디지털 구도를 결합한 회화는 신선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품 설명에 'AI 협업'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논의가 일었다. 일부 미술대학 교수들과 예술단체 회원들은 해당 작품이 인간의 창작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단순히 한 작가의 사례를 넘어, 예술계가 AI 기반 창작물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 AI생성물 저작권 인식낮아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성을 보호 대상으로 한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만 저작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I가 만든 작품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AI는 저작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AI의 창작 도구 활용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저작권이 인정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저작권위원회는 인간 기여도가 50% 이상일 경우만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 그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기준은 아직 없다.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결과물을 수정하는 것이 과연 창작인지, 어디까지를 인간의 기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는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 역시 AI 기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1~2년 사이, 전 세계 음악 창작자들이 AI 툴의 도움을 받아 작업한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작사, 작곡은 물론 영상과 보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창작 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향후 창작자 간 기여도나 저작권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AI가 창작하기 이전, 무엇을 학습했는가이다. 지난 5월, 한 중견 웹툰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을 무단 학습에 사용한 구글 딥마인드의 이미지 생성 모델 ‘Imagen2’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작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에서 자신 캐릭터의 인상착의, 동작 구도, 대사 구조까지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딥마인드는 공정 사용이라고 항변했지만, 해당 사건은 국내 첫 AI 학습 데이터 저작권 소송으로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이처럼 AI가 누구의 작품을 어떻게 학습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독일 등은 저작권자의 ‘옵트아웃 권리’를 명문화했지만, 한국은 관련 제도가 없다. AI 생성물의 70% 이상이 출처 표기 없이 유통된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 문제에 둔감한지를 보여준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AI와 협업한 예술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AI가 만든, 또는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고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출처 LGCNS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AI와 협업한 예술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AI가 만든, 또는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고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출처 LGCNS
‘AI 협업’ 불투명…생태계 신뢰 깨

AI 기술은 예술의 생산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창작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특히 AI가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한 결과물을 생성하여 시장에 내놓는 경우, 이는 창작자의 명성을 훼손하고, 저작권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AI 협업 여부를 명시하지 않거나, AI가 만든 작품을 자신의 것인 양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창작자 간 불신을 낳고, 궁극적으로 예술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혼란은 우리 법 체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저작권법 제35조의3은 교육·연구 목적의 데이터마이닝은 저작권자 동의 없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개정된 이 조항은 생성형 AI가 상업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는 시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만들어졌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AI법(AI Act)을 시행해, AI 개발자가 학습 데이터 출처를 공개하고, 창작자가 요청할 경우 해당 데이터를 삭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반면 한국은 아직 유사한 입법도, 검증 기구도 없다.

기여도 세분화…관리체계 도입을

해외에서는 AI 창작물에 대한 메타데이터 기록 및 표시 의무화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AI 보조로 작성된 기사에 메타데이터 링크를 삽입하고 있으며, 일본 NHK는 AI 편집 뉴스 영상에 별도 라벨을 부착하는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국내 콘텐츠 플랫폼에선 AI 생성 여부를 표시하는 비율이 23%에 불과하다. 특히 시각예술, 문학 분야는 10% 미만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단순한 문구 표시가 아닌, 누가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예술 분야에서만큼은 보다 정교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문화체육관광부는 AI 학습 적합성 검토 기구를 설립해,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예술가의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활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디지털 거부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AI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은 창작보조(30% 미만), 공동창작(30~70%), AI 주도(70% 이상) 등으로 기여도를 구분하고, 이를 QR코드나 메타데이터로 표시하는 투명한 관리 체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AI 기술의 발전은 예술 창작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예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기술은 그림물감이고, 인간은 화가다. 창작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며, 제도의 역할은 그 창의성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데 있다. 지금은 기술의 경계보다, 예술의 존엄을 지켜내는 법적 장치를 다시 써야 할 시점이다.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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