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해이 논란 피하기 어려워
정책ㆍ재정건전성 균형 고려해야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결과 1위를 차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선이 확정된다면 금융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후보의 금융정책은 취약계층의 금융부담을 덜고 금융시장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가산금리 구조 손질, 대환대출 확대, 채무조정 강화, 배드뱅크 설립 등이 주요 정책 수단으로 제시됐다. 금융감독 체계를 포함한 제도 전반의 손질도 예고됐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의 공공성과 시장 신뢰 회복을 앞세운 정책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과도한 시장 개입과 금융회사 수익성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책 실행 과정에서 시장의 자율성과 균형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
3일 민주당 공약집 등에 따르면 이 후보의 금융 관련 정책 기조는 기존 금융시장 안정, 건전성 유지에서 채무자 보호와 공공성 강화로 중심축이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전 정권에서도 소상공인·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책은 시행됐으나 주로 대출 만기 연장, 이자 납입 유예 등 한시적 유동성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이 후보는 채무자 중심의 금융정책 전환을 통해 보다 구조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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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공공 배드뱅크 설립과 장기연체채권 소각, 특별감면제, 상환유예제 등 청산형 채무조정 체계 구축이다. 이는 일시적인 유예 조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금융구조 자체의 재편을 전제로 한 정책 방향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 후보는 대환대출 활성화, 가산금리 구조 손질, 중도상환수수료 감면 등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한 실무 정책들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금융의 공공적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후보는 기존 채무조정 프로그램도 유지하되 지원 자격을 완화하고 대상 범위도 넓힌다. 특히 코로나19 대출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도 마련할 생각이다.
이러한 정책 구상 배경에는 팬데믹 이후 폭증한 소상공인ㆍ취약계층의 빚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저소득, 저신용, 다중채무자인 취약자영업자는 42만7000명으로 3년 전인 2021년 말(28만1000명)보다 50%가량 늘었다. 이 당선인이 이번 공약을 단순한 복지 지원이 아니라 내수경제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한 ‘경제 안정정책’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가계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고 내수경제를 살리겠다”며 정책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채무 감면이 제도화되면 금융사들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대출에 대해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상 신규 여신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 주도의 채권 소각은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빚을 갚지 않아도 국가가 해결해준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금융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재원이다. 배드뱅크 설립과 부실채권 매입에는 수조 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당선인과 민주당은 2025년 추경과 2026년 본예산에 관련 예산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나 야당과의 정치적 합의 없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금융권의 협조도 필수다.
정책 우선순위 측면에서는 저금리 대환대출 제도화와 가산금리 산정 구조 개편 등이 비교적 빠르게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산금리 산정 구조 개편은 그간 민주당에서 추진해온 정책 과제이기도 해 새 정부 초기 ‘1호 금융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주요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 후보는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의 명확한 분리를 통해 금융당국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능과 금융감독원의 감독 기능을 재정립해 감독 체계를 일원화한다. 기능 이관과 조직 개편을 둘러싼 제도 설계가 복잡한 만큼 관련 논의는 중장기 과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의 채무 문제를 정리하지 않을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 후보의 금융 공약은 단기 유예를 넘어선 구조적 접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배드뱅크 설립이나 채무조정 확대처럼 재정이 수반되는 정책은 파장이 클 수 있는 만큼 집행 과정에서 정책 목표와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