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 농어촌은 물론이고, 지방 중소도시뿐 아니라 대도시마저 인구 유출로 무너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인구는 15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이 20~30대 청년층이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교육과 일자리, 기회의 중심이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의미한다.
과연 공공기관 몇 개 옮기고 도로와 철도를 확장하는 것으로 국가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인프라 중심 균형발전’만으로는 지역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진짜 균형발전은 산업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람이 지역에 남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먹고살 만한 산업’이 있어야 한다. 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있어야 인구가 정착한다. 이것이 지역이 살아나는 순환의 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5극3특’ 전략은 단순한 국토공간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일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 동남권·충청권·호남권·강원권·제주권 등 권역별로 특화된 산업을 육성하고, 그 기반 위에 정주 여건을 갖추는 것이다. 각 권역의 산업 역량과 지리적 조건을 고려해, 동남권은 스마트 제조, 충청권은 반도체·바이오, 호남권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설계한다. 그리고 그 축을 연결하는 특별지대(3특)에는 연구개발(R&D), 디지털 클러스터, 규제자유특구 같은 고부가가치 기능이 집중된다.
이 전략은 ‘지방도 수도권처럼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준다. 혁신 클러스터가 지역에 생기고, 첨단기업이 지방에 투자하고,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지역은 경쟁력을 갖게 된다. 정부는 이러한 지역산업 전환을 위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 규제 완화, 금융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교육과 연구 인프라, 디지털 인프라도 함께 이전돼야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가 형성된다.
지방대학의 위기 역시 산업 기반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 지역에 매력적인 기업이 없으면 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나게 된다. 대학-산업-지자체가 삼각 협력체계를 이루고,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과 연구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럴 때 지역 대학이 산업과 지역경제의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은 결코 지역에 대한 시혜나 온정이 아니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대한민국의 구조를 더는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생존 전략으로 균형발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수도권 과밀은 주택난, 교통혼잡, 환경문제를 심화시키고 있고, 지방 소멸은 국토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균형발전은 대한민국 전체가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한 공동의 과제다.
지금은 지역을 산업의 주역으로 재설계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균형발전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산업이 성장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업이 있고, 일자리가 있고, 미래가 있는 지역이 살아남는다.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은 지방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힘, 즉 산업균형에서 출발한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실천의 시점은 지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