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행 금지 구역 설정도 일삼는 중국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 할 수 있나
한국과 중국 사이의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물길이 잠시 막혔다. 중국 해상안전국이 22일부터 27일까지 PMZ 3개 구역에 대해 선박 출입을 금한 까닭이다. 2개 구역은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맞물린다. 하나는 그나마 한·중 양국의 EEZ에 걸쳐 있지만, 다른 하나는 한국 EEZ 안에 설정됐다. 남의 땅을 놓고 ‘디뎌라, 말아라’ 하는 격이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조폭 행태다.
서해상 해양경계는 획정되지 않았다. 분쟁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한·중은 2000년 한중어업협정을 체결했다. PMZ는 2001년 발효된 수역으로, 양국의 200해리 EEZ가 겹치는 곳에 설정됐다. 어업을 제외한 다른 행위를 해선 안 되는 민감한 수역이다.
중국이 항행 금지 구역을 설정한 곳은 공해다. 영해가 아니다.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해군도 훈련한 적이 있다니 군사 목적 역시 시빗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불씨가 있다. 중국이 이 구역에 철 구조물을 연이어 설치했다는 점이다. 2018년 반(半)잠수식 구조물 1기를 설치한 데 이어 총 3기를 무단 설치했다. 큰 불씨고, 위험한 불씨다. 여태껏 큰불이 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중국은 양어장 관련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어업’ 명분을 겨냥한 변명이다. 속내는 뻔하다. 남·동중국해 등지에서 국제 갈등을 빚는 중국 인공섬의 서해 버전 아닌가. ‘알박기’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여기에 이번엔 한국의 6월 대선을 앞두고 일방적인 조치까지 더해졌다. 충격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의 ‘권선징악’ 애니메이션이라면 슈퍼맨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지정학 세계는 만화영화가 아니다. 설혹 망토 걸친 슈퍼맨이 나선다 해도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개연성이 많다는 한계도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회귀’ 정책을 펴던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2015년 10월 27일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베트남명 쯔엉사군도)에서 중국이 건설 중이던 인공섬의 12해리 안쪽 수역으로 항행했다.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수역이다. 미 초계기가 호위 비행을 했다. 백악관이 작심하고 실행한 군사적 위력 과시였다.
2016년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이 나왔다. 중국이 이른바 구단선을 남중국해에 긋고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중국과 다투는 나라들은 다 쌍수를 들어 반겼다. 미 행정부가 거듭 ‘국제규범’ 준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승부는 난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비쳤다.

그래서 어찌 됐나. 작금의 현실은 허망할 정도다. 2025년 현재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 암초 7곳에 인공섬을 완성해 군사 기지로 쓰고 있다. 비행장, 미사일 발사대 등이 들어섰다. 다른 해역에서도 군사 요새화가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때로 전투기 출격, 항모 동원도 불사한다.
이젠 심지어 서해에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2월 우리 해양 조사선이 서해 구조물에 접근하자 위협적으로 가로막은 일도 있다. 앞서 지난해 5월엔 인근 수역을 비행하던 호주 해군 헬기를 향해 중국 J-10 전투기가 조명탄을 발사했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 중국 팽창주의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외려 설상가상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지면을 통해 “‘셰셰’, 정말 이러면 되나”를 물은 바 있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 지나면 대선이다. 차기 정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지정학의 도전적 과제를 피해갈 수 없다. 서해 PMZ의 분규도 국가안보 테이블 위에 놓일 것이다. 차기 대권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입장이 가장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최근 대구 유세에서 “제가 ‘셰셰’했다. 중국에도 ‘셰셰’하고, 대만에도 ‘셰셰’하고,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되지, 대만하고 중국하고 싸우든지 말든지,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틀린 말 했냐”고도 했다. 지난해 논란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 이렇게 믿나. ‘셰셰’하면 되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주말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모든 나라를 방어하는 게 우선인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이런 트럼프에겐 “생큐”라고 할 것인가. 엄중히 답할 필요가 있다. 5000만 국민도, 국제사회도 여간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