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합의 희망자도 상당…합의 안해도 지속 지원"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유족 84%가 합의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개별 조사 중간 결과를 공개한 것을 두고 피해자 단체 일각이 반발하고 나섰다. 응답률이 높지 않은데도 정부가 피해자·유족의 주된 의견이 합의인 것처럼 발표했다는 취지다. 정부는 당초 4월 말부터 개별 의견 조사 기간을 약 한 달로 잡고 진행한 데다, 합의를 원하지 않는 측도 기존 구제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반발이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1~2주 내 조사를 마무리하고 합의대표 선출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26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22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유족 5413명을 대상으로 집단 합의 동의 여부 등을 묻는 개별 의견 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21일 오전 9시 기준 대상자 중 1965명(36.3%)가 응답한 가운데 1655명(84.2%)이 '합의 희망'을 택했다. '합의 미희망'은 266명(13.5%), 기타 의견'은 44명(2.2%)이었다.
2011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2021~2022년 피해구제 합의 논의가 추진됐지만 피해자 단체 간 이견과 관련 기업 비용 분담 문제, 합의에 따라 보상하면 종결되는 '종국성' 미보장 문제 등으로 불발됐다. 현재 관련 피해자 참여 단체는 23곳,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확인된 노출자 단체는 4곳에 달한다. 피해 수준이나 현재 건강 상태, 나이 등에 따라 보상 합의로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측과 지속적인 치료 지원을 원하는 측 등 피해자 사이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있어서다.
2017년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828명으로, 작년까지 1865억 원이 지원됐다. 피해구제자금은 작년 기준 2750억 원(사업자분담금 2500억 원·정부출연금 225억 원) 수준이다. 정부는 해당 법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에게 치료비, 요양생활수당 등을 지급하고 있다.
이번 개별 의견 조사는 최근 지역별 피해자 간담회에서 제시된 의견 중 정부-기업 간 집단 합의를 희망하는 피해자·유족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집단 합의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피해자·유족 개개인으로부터 문자·이메일·팩스 등을 통해 합의 의향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환경부는 5월 중순까지 조사를 마칠 계획이었지만, 응답률이 저조해 미응답 피해자·유족 4000여 명에게 일일이 우편을 보내 응답을 요청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우편을 4000통 넘게 보냈는데 답변이 느리게 들어오고 있다"며 "예정된 기간이 있으니 중간 결과 정도는 공개하고 의견이 들어오는 대로 반영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 단체는 이러한 환경부 발표를 '통계 조작'으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간질성폐질환 피해 유족·피해자 단체' 대표인 김미란 씨는 관련 입장문을 통해 "환경부 보도자료는 터무니없는 통계 조작"이라며 "미응답자는 합의 불신, 정보 부족, 건강 악화로 배제됐을 가능성이 크다. 조사 결과가 소수 의견에 치우쳐 합의 제도가 편파적으로 설계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 단체엔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유족 8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대표는 통화에서 "조사 자체가 피해자 중심이 아닌 가해자, 합의 중심"이라며 "부실한 피해구제법 개정부터 해달라는 건데 정부는 합의로만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분개했다. 이어 "기존 구제제도에 남으면 계속 지원해 주겠다지만 우리 입장은 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조사도 피해자 중심으로 다시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듣지 않아 보이콧했다. 해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피해자와 유족은 이번 설문 응답과 관계없이 향후 집단합의위원회에서 제시한 합의 기준 검토 후 실제 합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합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기존 피해구제 제도 내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이미 파악된 합의 희망자 규모도 적지 않은 만큼 일정 응답률을 넘길 때까지 조사 기간을 마냥 늘릴 수 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응답률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자 중 합의를 통해 피해 구제를 종료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분들도 상당하다"며 "그렇다면 그분들에 대해서는 합의를 진행해야 하니 합의대표를 선출하겠다는 것인데 합의를 반대하는 분들이 왜 다른 분들 합의도 반대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관련 법 개정이 우선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간 피해단체 면담, 간담회 등에서 의견을 들었고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가 끝나고 개정안이 나오면 국회 등에서 의견을 다시 수렴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합의로만 빨리 끝내려 한 적은 없다. 합의 절차를 거쳐 성안이 나왔을 때 처음에 합의를 희망한 분이라도 '이 정도 기준이면 안 된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고, 반대로 처음에 합의를 거부한 분이라도 합의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이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고 덧붙였다.
합의가 성사되면 피해자·유족에게 집단합의위원회가 제안한 일시금이 지급된다. 이 경우 기존 구제급여 지급은 종료되며,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한다. 정부의 개별 의견 조사에서 집단 합의를 희망했다 해도 합의위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해도 된다.
환경부는 1~2주 뒤인 6월 초순 관련 조사를 마무리하고 합의대표 선출 절차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중간 조사 결과 합의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는 540명이 신청했다. 앞서 환경부는 피해자·유족 측에 합의대표 선출 정부안을 수용할 경우 관련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경부 내에선 합의대표 선출이 이르면 한 달 내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환경부 관계자는 "간담회 때 피해자 연령대와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한 선관위 구성안을 제안했고 이 안대로 한다면 비용도 지원된다"며 "합의대표가 선출되면 정부·기업과 합의위를 구성해 합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