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기반 부재에 퇴출도 지지부진
K-크레인, 대체 공급처로 부상

‘안보 리스크’가 통상 협상 카드를 바꾸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컨테이너 크레인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새로운 협상 파트너로 부각되고 있는 것. 한미 조선업 협력이 항만 장비까지 확대될 경우 한국이 협상 구도에서 더욱 유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중국산 ‘컨테이너(STS·Ship to Shore) 크레인’에 대한 100% 추가 관세 부과 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현재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현재 미국 항만에 설치된 STS 크레인의 약 80%는 중국 국영기업 ZPMC가 공급했다. 이 크레인에는 원격 제어 시스템과 정밀 센서, 통신 장비 등이 탑재돼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이를 통해 자국의 물류 흐름과 극비 군사 작전 등을 감시·방해할 수 있다고 판단, 중국산 장비 퇴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 생산 기반의 부재다. 미국 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산 STS 크레인에 고율 관세를 매긴다고 해서 미국 내 생산 능력이 갑자기 생기진 않는다”며 “오히려 항만 운영비만 높아질 뿐”이라고 우려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한국이다. 한국은 항만 크레인을 공급할 유력 파트너로 꼽힌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16일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만나 항만 크레인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HD현대삼호의 크레인 제조 역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 공정 전반을 자체 수행할 수 있는 HD현대삼호는 미국이 요구하는 납기와 품질 수준을 충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후보로 꼽힌다. 실제 설계부터 제작, 시운전까지 전 공정을 자체 수행할 수 있으며, 연간 대형 크레인 10기를 제작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췄다.
한국 정부도 2023년 ‘항만기술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현재 30% 수준인 항만 장비 국산화율을 2031년 9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조선업 재건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생산 기반을 갖추긴 어려운 만큼 동맹국과의 협력이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미국과 오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기술력과 납기 면에서 강점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첨단기술 및 국가 안보 관련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 기반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이에 부합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내 관세 조건이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항만 크레인 협력은 단순한 산업 확장을 넘어 한미 통상 협상의 카드로서도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국가 안보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양대 축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략 분야”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