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시한 공공의대 설립 공약은 공공·필수의료의 기본적 개념을 무시한 엉터리 구상이라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19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의학계 전문가들과 ‘공공의대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의료정책포럼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공공의대 설립 공약을 정면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2일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보건의료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은혜 순천향대학교 영상의학과 교수는 해당 공약이 공공∙필수의료 용어를 남용하며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공의료의 정의는 ‘공적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다. 한국의 경우 공적 재정인 국민건강보험을 활용해 제공되는 의료가 공공의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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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는 이른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뿐 아니라,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급여진료 모두를 포함한다. 건강보험 의료보장제도의 목적은 모든 국민에게 비용부담 없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며, 실제로 필수적인 의료행위는 모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명확한 정의와 개념 분류에 따르면 공공병원이 생산하는 의료서비스는 공공의료의 일부일 뿐, 전체 공공의료가 아니다”라며 “공공의대를 별도로 만드는 것은 공공의료의 정의에 대한 무지의 결과로,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출발부터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국립의대가 10개나 있는데 이를 놔두고 공공의대를 따로 설립할 명분은 더욱 없다”라고 덧붙였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구분이 모호한 국내 의료 환경을 고려하면, 공공의대는 더욱 명분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은 의료 수요자인 환자에게는 시장경쟁이 없이 공평한 접근을 보장하지만, 공급자인 의사들의 시장은 유지되는 ‘의료사회화’ 체계다. 수요자와 공급자 시장을 모두 없앤 유럽식 의료사회주의와는 차이가 크다.
또한 한국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된다. 이에 따라 국공립·사립 병원이 모두 공공의료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급여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는 엄밀한 의미의 민간의료가 없는 셈이다.
이 교수는 “만약 공공의대가 명분이 있으려면, 공공의대 출신만 공공의료에 종사하고 기존 국립의대와 사립의대 출신은 민간의료에 종사해야 한다”라며 “공공의대 출신만으로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 급여 의료를 제공하려면 공공의대 정원이 3000명쯤은 돼야 하므로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에 공공의대를 만들려면 엄청난 세금부담과 함께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며, 졸업자가 현장에 배치되려면 추가로 10년이 걸릴 텐데 그 시간 동안 공공의료를 방치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라며 “국민이 필요한 것은 실력 있는 의사이지, 의사면허 소지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