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칼럼] 법치 무너지면 경제公約도 공염불일 뿐

입력 2025-05-1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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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법대 학장ㆍ前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정파 이해 입법리스크에 시장왜곡
기득권 정치구조 깨야 '진짜 개헌'
달콤한 말보다 '신뢰 이력'을 봐야

6·3 대선을 앞두고 공식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좌우 진영은 이미 극단적으로 갈라져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결국 선거의 향방은 중도층, 무당층을 얼마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일까. 각 진영은 경쟁적으로 ‘경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투자 유치를 비롯해 일자리 창출, 민생 안정, 지역별 맞춤 경제 개발 같은 공약(公約)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경제는 단순한 숫자 몇 개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 성장의 실질적 토대는 ‘신뢰’이고, 그 신뢰는 바로 ‘제도’에서 비롯된다. 기업이 투자를 감행하고, 개인이 창업과 소비를 선택하는 모든 경제 행위의 배후에는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 판결은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지고, 법의 해석은 정권의 이해 관계에 따라 흔들린다. 재판은 결과에 따라 미리 짜인 각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느 기업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어떤 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할 수 있겠는가. 시장은 정치보다 더 예민하게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움츠러든다.

법의 역할은 단지 분쟁 해결에 그치지 않는다. 정의와 함께 법이 실현해야 할 또 다른 축은 바로 ‘법적 안정성’이다.

법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고, 자의가 배제되며, 정치로부터 독립된 사법이 작동할 때 시장은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경제 인프라다.

고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조차 ‘국부론’에서 자유시장보다 먼저 강조한 것은 ‘법과 도덕’이었다. 그는 영국의 사법제도, 재판 관행, 계약 이행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경제의 기초는 결국 사회의 질서에 있다고 보았다. 약속이 지켜지는 공동체, 예측 가능한 제도, 일관된 규범 없이는 시장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처한 가장 중대한 위기는 ‘정치 리스크’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입법 리스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정책과 관련된 법이 크게 출렁인다.

과거 정부가 마련한 제도는 손쉽게 뒤집히고, 입법은 정파의 이해에 휘둘린다. 이처럼 불안정한 법률 환경은 기업에는 투자 포기 신호이고, 자영업자에게는 생존 위협이며, 청년에게는 기회의 소멸이다.

진짜 경제 회복을 원한다면 제도에 대한 신뢰부터 복원해야 한다. 여기서 개헌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경제개헌’, ‘민생개헌’은 단지 정치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도,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청년도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다.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는 대부분 대통령제 폐지냐, 의원내각제냐, 이원집정부제냐 같은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는 정치인들의 기득권 연장과 자기보호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 왔을 뿐이다. 국민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개헌은 여의도의 권력을 줄이고, 기득권 정치 구조를 깨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무제한 연임 금지, 상·하 양원제를 통한 의회 내 견제와 균형은 경제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정치는 권력의 논리가 아니라, 신뢰의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개헌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 빚지지 않은 사람, 법과 약속의 가치를 일관되게 지켜온 사람, 삶 자체가 신뢰였던 사람만이 이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

경제의 뿌리는 일관성과 신뢰를 주는 제도이다. 그 뿌리가 썩은 곳에서 결코 튼실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주겠다는 달콤한 공약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를 바꾸겠다는 단단한 의지다. 한결같은 지도자만이 한결같은 제도를 만들고, 그 위에 진짜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는 후보가 아니라, 신뢰의 이력을 가진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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