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럽게 눈이 침침해지거나 시야가 답답하게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면 빨리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피로에 따른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여겨 방치하면 뇌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을 키울 수 있어서다. 눈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눈뿐 아니라 몸의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급성 시력 저하가 다양한 증상과 함께 나타날 때 의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은 △시신경염 △앞허혈시신경병증 △압박 시신경병증 △동명성 시야장애 등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한 다양한 검사와 임상적 소견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갑자기 생긴 것인지, 어느 상황에서 인지했는지, 통증이나 구토 같은 증상이 동반됐는지 등이 진단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시신경에 염증이 생기는 시신경염의 가장 흔한 유형은 급성 탈수초시신경염이다. 통상적으로 별다른 치료가 없어도 회복할 수 있으며,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로 시력 회복 속도를 당길 수 있다. 장기적인 시력 경과는 치료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없다.
시신경염 중 동양인의 발병률이 높은 시신경척수염은 시력저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자연회복이 드물다. 뇌신경을 침범해 다른 신경학적 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영구적인 신경학적 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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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허혈시신경병증은 눈으로 가는 혈류가 갑자기 차단돼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비동맥염성과 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은 40세 이상의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 흔하다. 전형적으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 등 혈관질환 위험인자가 1개 이상 있을 때 발생한다. 종양이나 혈관염, 자가면역질환이 없고 안구 통증이나 복시 등 다른 신경학적 증상도 없다. 한 눈에만 증상이 생기기 때문에 진단이 확인되면 반대안에도 비슷한 시신경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위험인자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은 보통 70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 자주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혈관염으로 인한 혈관 수축으로 갑작스러운 시신경 경색이 나타난다. 두통, 두피 압통, 턱관절 파행, 발열, 체중감소, 쇠약감 등의 전신 증상과 시력 저하, 복시 등 안과적 증상이 생긴다. 대개 시력저하가 심하고 시야 장애도 광범위하다. 고령 환자에서 의심 소견이 보이면 응급으로 혈액검사를 시행하고, 결과에 따라 혈관 조직검사가 필요하다. 확진되면 반대편 눈의 침범을 예방하기 위해 신속히 전신 스테로이드 투여와 수액 공급을 시행한다.
압박 시신경병증은 뇌하수체 종양이나 동맥류가 시신경을 압박하면 시야가 갑자기 좁아지는 질환이다. 동맥류에 의한 시신경 압박은 대개 서서히 생기지만, 동맥류가 갑자기 팽창하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급성 시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뇌하수체종양에 출혈이나 경색이 발생한 경우에도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과 함께 의식 상태가 변화하며 시신경이 압박돼 시력 저하가 생길 수 있다. 이를 뇌하수체졸중이라고 하는데, 종양이 있는 환자의 첫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질환이 의심되면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즉각적인 전신 스테로이드 투여가 필요하다. 일부는 주사만으로 호전되지만 대개 수술이 필요하다.
동명성 시야장애는 양쪽 눈의 같은 방향 시야가 같이 보이지 않게 되는 증상이다. 뇌의 시각 처리 부위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며, 주로 후두엽경색이 원인이다. 후두엽경색이 오기에 앞서 일시적인 양 눈 흐림, 침침한 등이 전조증상으로 발생한다. 심장에서 유발된 색전이 가장 흔한 원인데, 후두엽경색이 심근경색이나 심방세동의 첫 징후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심장질환 환자들에게 시야 결손이 생기면 심전도 검사를 응급으로 받아야 한다.
신영인 가천대 길병원 안과 교수는 “눈은 우리 몸에서 외부 신경 이상을 가장 빨리 반영하는 기관 중 하나이므로 단순한 시력저하로 보이는 증상이라도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중대한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 시야의 일부가 가려짐, 눈 통증과 함께 구토나 양쪽 눈에 같은 방향의 시야장애와 심한 두통 및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 최대한 빠르게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