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러시아 시장 재진출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다만 전쟁 발생 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중국 브랜드가 장악한 데다가 러시아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재진출 결정 전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9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간한 ‘러-우 전쟁 발생 후 러시아 시장 변화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러-우 전쟁 발생 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현지생산에서 수입 중심으로, 글로벌 브랜드에서 중국 브랜드 중심으로 변화했다.
전쟁 발생 전인 2021년 기준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는 현대차그룹이었다. 이어 2위는 러시아 브랜드 라다(Lada), 폭스바겐, 르노, 도요타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들 기업은 러시아 정부나 기업에 현지 생산시설을 매각하고 잇따라 철수했다. 이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의 빈자리를 중국산 차량이 빠르게 대체하며 수입 중심 구조로 전환됐다.
러시아의 승용차 생산량은 2021년 140만 대에서 2024년 74만 대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으며 단기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는 공급난 완화를 위해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 등에서의 수입을 확대했다. 그 결과 2021년 10% 미만이었던 중국 브랜드의 신차 판매 점유율은 지난해 과반으로 급증했다. 신차 수입 중 중국 브랜드의 비중도 80%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정부는 자동차 수입 억제 정책을 강화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입차에 대한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는 재활용 수수료를 대폭 인상해 수입 억제에 나섰다.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 간의 통관 정보 공유 시스템을 도입하고, 우회 수입을 차단하기 위한 세금 회피 방지책도 강화하고 있다. 우호국 브랜드 자동차에 대한 수입 절차를 강화하는 등 사실상 중국 브랜드를 직접 겨냥한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정책 변화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현지화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브랜드는 수십 개에 달하지만, 자체 생산시설을 갖춘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병행수입 또는 위탁 생산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현지 기반을 갖추지 못한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러시아 시장 재진출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변화된 시장·소비자 환경과 러시아 정부의 높은 정책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중국 브랜드에 대한 러시아 소비자들의 인식·수용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글로벌 제조사가 러시아 시장에 재진출해도 과거의 높은 점유율을 쉽게 회복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정부가 글로벌 제조사의 자국 시장 재진출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보고서는 러시아 정부가 앞으로 외국 자동차 제조사에 합작, 기술 공유, 현지화 등 요구 수준을 기존보다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서연 한자연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시장은 다양한 차원에서 높은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는 만큼 재진출 의사결정에 앞서 다양한 시나리오 및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며 “재진출 여부 자체에 대한 의사결정을 넘어 다양한 접근법에 따른 전략, 특히 고비용-고규제 환경을 고려한 합작·위탁 생산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