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의 갈등이 좀처럼 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오는 11일을 단일화 데드라인으로 보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당에 대한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김 후보와 한 후보가 나흘 안에 단일화 실마리를 찾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문수 후보는 이날 오후 6시 한덕수 후보와 회동한다. 앞서 김 후보는 전날 밤 입장문을 통해 "약속은 후보가 제안했다. 단일화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없어야 한다"며 회동을 예고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만날지는 회동 시작 시점에 공개하기로 했다.
김 후보는 "당 지도부는 더 이상 단일화에 개입하지 말고,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이 시각부터 단일화는 전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주도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7일 당이 실시하는 단일화 관련 설문 조사를 '불필요한 여론조사'로 규정하며 "당의 화합을 해치는 행위로,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입장은 김 후보가 전날 '후보 일정 전면 중단'을 선언한지 약 6시간 만에 나왔다. 김 후보는 3일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무 우선권을 두고 내분을 겪어 왔고, 대선을 불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 후보 스스로 유세 일정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 후보는 전날 오전 입장문에서 "당은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지도 후보를 배제한 채 일방적 당 운영을 강행하는 등 사실상 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단일화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필수적인 선거대책본부 구성과 당직자 임명에도 아직 협조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후보가 주도해야 할 단일화 추진 기구도 일방적으로 구성하고 통보했다"고 불쾌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김 후보 측 김재원 비서실장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전당대회를 마치고 순조롭게 단일화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는데 여러 요인들이 개입되면서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고 후보를 부당하게 압박하는 여러 일들이 반복되면서 굉장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며 "대통령 후보의 지시 감독을 받아야 할 당 지도부가 대통령 후보를 압박하고 나서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임을 이해해야 단일화 작업이 쉽게 풀릴 수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시한을 정하고, 압박하고, 심지어 후보자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로 보이는 행위가 반복되면 후보로서도 응하기 쉽지 않다. 이런 행위들은 전부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는 단일화와 관련한 논의를 위해 김 후보에 대한 접촉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전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방에서 후보 일정을 소화 중인 김 후보를 만나기 위해 대구로 내려가던 중 김 후보의 갑작스러운 서울행에 만남이 불발됐고, 같은 날 밤엔 권 원대대표와 김기현 의원 등이 밤 김 후보를 만나기 위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김 후보의 자택 앞에서 대기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날 오전에도 박형수·박수민·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이 오후에 열리는 의총 참석을 설득하기 위해 김 후보 캠프를 찾았지만 또다시 불발됐다.
김 후보는 이날 당 지도부가 아닌 경선을 함께 뛴 나경원·안철수 의원을 만났다. 앞서 김 후보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함께 경선에 참여했던 모든 후보들을 따로 만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의원의 경우 경선 탈락 후 김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안 의원은 이날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후보가 점지된 후보였다면 우리 당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들러리였던 것인가"라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허겁지겁 단일화를 밀어붙일 거였다면, 도대체 왜 경선을 치렀나"라고 당을 비판했다.
당은 이날도 단일화를 '오늘 안에' 확정해야 한다며 압박했다. 김 후보 측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권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반드시 오늘 안에 단일화를 확정지어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당 내에선 단일화가 무산되면 당이 사실상 공중분해에 가까운 위기를 겪을 것이란 우려감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이번 단일화 담판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 대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후보는 단일화를 전적으로 자신이 주도한다도 이미 공언했고, 한 후보도 전날 "권력을 배분하고, 임기 3년을 마치고 확실히 떠나겠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했다.
두 후보가 단일화 효과를 누리려면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까지 단일화가 성사돼야 한다. 단일화가 어느 쪽으로든 성사돼 국민의힘 후보로 등록하면 '기호 2번'을 사용할 수 있다. 무산되면 김 후보는 2번에, 무소속인 한 후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한 후보는 선거 비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는 이번 사태를 두고 "파국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