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가치 제고계획(밸류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지 1년을 맞은 가운데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금액이 처음으로 연간 2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기업들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에 미달하는 저평가 기업이 오히려 늘어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근본적 해소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부의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분기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이 공시한 자사주 취득 결정 금액 합계는 22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액은 2018~2023년 평균 6조 원대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겼다.
자사주 소각결정 금액 역시 19조6000억 원으로 20조 원에 육박하는 등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밸류업 공시에 동참하는 기업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해 2분기 3개사였던 본공시 기업은 3분기에 11개사, 연말인 4분기에는 80개사로 크게 늘었다. 올해도 1분기 31개사, 2분기는 현재까지 18개사로 꾸준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국내 상장사들에 대한 가치평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 기준 상장사 812곳 중 PBR 1배 미만 기업은 565곳으로, 전체의 69.58%에 달했다. 1년 전 801곳 중 531곳, 전체의 66.29%였던 데 비해 오히려 저평가 기업이 늘어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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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증시를 보는 시선도 이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 편·출입을 결정하는 5월 MSCI 정기 리뷰가 오는 14일 예정된 가운데 편입 종목 없이 편출 종목만 늘면서 한국 지수 종목은 또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가장 최근인 2월 리뷰에서는 편입 없이 11개 종목이 편출되면서 한국 지수 종목 수가 92개에서 81개로 줄어든 바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99개에서 5월과 8월 연속 98개, 11월 92개 등으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등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시장의 체질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은 “구조적 저평가의 핵심에는 낮은 PBR, 불투명한 지배구조, 단발성에 그치는 주주환원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단기 이벤트로는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며 “지배구조 개혁 없는 단기 정책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