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파견을 다녀온 뒤 퇴사한 근로자에게 약정에 따라 파견 비용을 반환하라는 회사의 요구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퇴직자 A 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5일 확정했다.
A 씨는 사내 공모 절차를 거쳐 2016년 8월~2019년 6월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파견 비용 부담 전문가(CFE)’로 근무했다.
파견 선발 과정에서 A 씨는 ‘근무기간을 채우고 복직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썼다. 규정을 위반하면 보증인인 장인‧장모와 연계해 비용을 반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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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고용 휴직 상태로 IAEA에서 근무했고, 기술원은 파견 비용으로 IAEA에 30만4000유로(현재 기준 약 4억9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이후 A 씨는 2019년 7월 기술원에 복귀한 뒤 곧바로 사직서를 냈다. 그러자 기술원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A 씨를 파면했다.
또 'IAEA 파견 근무자는 복귀 후 파견기간의 2배를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을 근거로 약정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 씨도 기술원을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1심은 “서약서상 환급금 반환 규정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교육훈련‧연수를 위해 비용을 우선 지출하고, 근로자는 지출 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상환하는 의무를 부담하되 일정 기간 근무하면 의무를 면제해주는 취지”라며 “이러한 약정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기술원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원과 A 씨의 근로 관계가 종료됐고, A 씨가 징계의 무효를 다툴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각하했다.
A 씨는 환급금 반환 부분만 항소했다. A 씨는 “환급금 반환 관련 조항은 근로자가 사실상 강제 노동을 제공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계속 근로를 방지해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보장하려는 목적이다.
2심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비용 반환 규정은 일정 기간 근로자 의무를 부여하고, 약정한 근무기간 이전에 퇴직하면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지 묻지 않고 바로 임금 상당액을 반환하는 것”이라며 “근로기준법 제20조의 입법 목적에 반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아울러 “A 씨의 파견은 교육훈련 또는 연수로 보기 어렵고, 핵안보‧물리적 방호 분야 전문가로서 기술원에서 수행하던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IAEA에 근로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연수 지원금이 아니라 근로에 따른 임금이라는 취지다.
대법원도 “A 씨가 받은 보수와 체제비 등은 해외근무에 대한 대가 등으로 기술원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며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