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ㆍ원자재ㆍ에너지 무기화
특정국가 의존 높을수록 치명적
주요 선진국 온갖 규제 쏟아내
정부ㆍ민간 하나로 움직여야
수출구조 글로벌 사우스 확장
“경제안보 시대의 본질은 결국 제조업입니다. 제조업을 지탱하는 핵심 뿌리는 바로 공급망이고,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주도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사장이 24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던진 일성이다. 강 사장은 경제안보라는 시대적 과제가 단순히 추상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으며, 국가 산업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대응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국방과 군사 중심이던 안보 개념은 이제 경제안보로 확대됐다. 반도체, 원자재, 에너지와 같은 산업 자원이 무기화되면서 공급망 단절이 곧 국가 경쟁력 붕괴로 직결되는 것이 현실이다. 강 사장은 “이제 경제안보는 생존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기술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주요 변수로 꼽았다. 강 사장은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을수록 위기의 파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며 러시아의 가스 차단으로 인한 유럽 경제 충격, 세계적인 식량·에너지 가격 급등 사례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차단했고 유럽 물가는 폭등했다. 식량 가격이 치솟고 공장 가동도 멈췄다. 미국 등 주요 국가는 경제 안보를 위해 온갖 규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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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건도 재조명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다. 이후 우리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 수출규제’를 제소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그는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제조업에 경종을 울렸고 이를 계기로 소부장 자립화가 급물살을 탔다”면서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약 1년 이상의 어려움 속에 정부는 ‘소재부품장비특별법’을 제정했고, 이는 국내 최초로 ‘안보’를 법적 명분으로 삼은 경제 법안이었다.
현재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전방위적 법제와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이차전지·자동차 등 핵심 산업의 자국 내 생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유럽경제안보전략’을 통해 원자재 확보 및 기술 보호에 나섰다. 일본 역시 TSMC 공장 유치에 1조 엔 이상의 보조금을 투입하며 첨단산업 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강 사장은 “일본이 돌관작업까지 하며 산업재건에 나서는 모습은 과거 한국의 성장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경제안보 시대엔 정부와 민간이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고 역설했다.그그는 한국이 경제안보 시대를 돌파할 두 가지 전략으로 소부장 자립화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꼽았다. 강 사장은 “우리가 지금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핵심 소부장이 국내에 있기 때문”이라면서 “단순 조립국이 아닌 설계·소재·장비까지 갖춘 한국의 산업 역량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미국·중국·유럽 중심의 수출 구조를 벗어나 글로벌 사우스로의 확장을 제안했다. 그는 “세계 인구의 63%가 이 지역에 있다.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아직 낮지만 연 평균 6%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라며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향후 10년간 한국 산업의 명운은 공급망 안정성, 특히 소부장 주도권 확보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강 사장은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로 우리가 소부장을 장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한국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안보 시대, 한국 제조업의 변곡점에서 강력한 자립화 전략과 글로벌 외연 확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