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독점한 '반도체 생명수' 국산화 잰걸음…구미 실증플랜트 가보니

입력 2024-05-30 12:00 수정 2024-05-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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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실트론서 환경부 주관 초순수 기술자립 R&D

25년까지 설계운영100%·소부장70% 국산화 목표
'설계' 한성크린텍·'배관' 진성이엔씨 등 사업참여
수질부합 韓초순수 日1200t 생산…설비검증 주력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초순수 실증플랜트 4층에 설치된 국산 자외선 산화 공정. (환경부)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초순수 실증플랜트 4층에 설치된 국산 자외선 산화 공정. (환경부)

"설계, 운영, 소부장 모두 국산기술로 만든 초순수(Ultrapure Water)를 써 반도체 웨이퍼(원판)를 생산할 날이 올 것입니다."

29일 오후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공장 내 초순수 실증플랜트 4층에선 각종 공정 기계, 펌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선 '반도체 생명수'로 불리는 초순수가 매일 2400t(톤)씩 생산된다. 최종 생산까지 30개 공정을 거쳐야 하는 초순수는 물 속 유기물·이온 등을 제거한 순수에 가장 가까운 물로, 반도체 웨이퍼 등의 불순물 세척에 사용된다. 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단위의 첨단 공정이 필요한 고급 반도체를 씻어내는 물에 불순물이 남으면 수율(웨이퍼 1장당 정품 칩 생산 비율) 등이 낮아져서다. 150mm 웨이퍼 1장 세척에 통상 초순수 0.8~1톤이 투입된다.

이경혁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수석연구원은 "초순수는 수돗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순수한 물"이라며 "산업별 용도도 반도체, 화학, 제철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사용하는 초순수 순도(18.2 MΩ·메가옴)가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초순수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지만, 그동안 구리타·노무라 등 일본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초순수 설계 분야 국내 점유율은 100%에 가깝다.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시공·운영 분야도 미국·일본 등의 무대였다. 해외 초순수 시장 규모는 2018년 19조3000억원에서 올해 23조1000억원으로 커졌다. 환경부가 △반도체급 초순수 생산 주요공정 및 설계·운영 100% 국산화 △소부장 70% 국산화를 위해 연구기간 5년(2021년 3월~2025년 12월), 총 연구비 443억 규모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추진한 배경이다.

구미 실증플랜트는 자체 초순수 설계기술을 보유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국가 R&D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수처리기업 한성크린텍이 설계·시공을 맡았다. 한성크린텍은 이 기술로 환경부 국책과제 기업에 선정됐고, 2022년 SK실트론과 863억원 규모의 초순수 EPC(설계·조달·시공)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5월부터 순수 국내기술로 반도체 공장에 초순수를 성공적으로 공급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구미를 찾아 "국산 초순수 기술로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해 힘써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증플랜트는 총 4층·390평 규모로 △탱크 시설(1층) △전처리(2층) △순수 공정·제어(3층) △초순수 공정(4층)으로 구분된다. 고층으로 갈수록 물이 깨끗해지는 구조다. 구조가 튼튼할수록 비용이 많아져 물탱크를 1층에 설치해서다. 사업비는 281억여원 투입됐다. 이곳엔 K-water 직원 9명이 교대 근무하며 1년 내내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그 밖에 배관기업인 진성이앤씨는 실증플랜트 배관 설계·시공, SK에코플랜트는 관련 사이버 교육 프로그램 임무를 수행했다. 반도체 소재 업체 SK실트론은 사용·검증과 시산표(T/B) 제공을, K-water는 초순수 기술자립 국가 R&D 사업의 전반적인 운영 등을 맡았다.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초순수 실증플랜트 전경. (환경부)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초순수 실증플랜트 전경. (환경부)

◇K-초순수, '반도체용 수질' 검증 완료…2030년 이후 수출 추진

이 시설의 일일 초순수 생산량 절반(1200톤)은 일본 등 외국기업의 소부장을 활용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국가 R&D 등으로 자체 개발한 자외선 산화(유기물 제거)·탈기막(기포 제거)·이온교환수지(이온 제거) 등 핵심 장치 3종을 적용해 최근 시운전을 마쳤다. 올해 초부터 국산 기자재 적용 초순수에 대한 1~4차 수질 분석을 거쳐 지난달 30일 미국 초순수분석센터 발라즈(Balazs)에 5차 분석을 맡긴 결과 반도체용 초순수 수질 기준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이 수석연구원은 "발라즈에서 최종적으로 0.5ppt(1조분의 1 농도)로 초순수 불순물이 수준 이하인 것을 확인했다"며 "다만 국산의 경우 외산에 비해 약간의 편차가 발생하고 있어 앞으로 좁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질 검증이 마무리된 만큼 하반기에는 SK실트론(고객사) 제품 검증을 비롯해 연말까지 6개월 연속 가동(성능 평가) 등 설비 검증에 주력할 계획이다. 내년까지 초순수 국산화·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관련 업계 세계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2030년까지는 초순수플랜트·분석센터 등 초순수 직접단지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수출에 나서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협력사들은 국산 초순수 경쟁력이 외산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정효중 한성크린텍 사업2본부 이사는 "초순수 플랜트 설계·시공은 충분히 역량이 갖춰진 상태"라며 "일본 기업에 비해서도 경쟁력 있게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수 진성이엔씨 기획·사업본부장은 "초순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배관·시공은 100% 자력으로 할 수 있다"며 "이번 시운전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자체 검증과 별개로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세계 초순수 시장을 잠식한 외산을 뚫을 '실적 쌓기'부터 만만치 않다. 김학승 SK실트론 부사장은 "(발주 기업은) 입찰 업체의 제조시설이 완벽한지, 실적 레퍼런스, 성장 가능성, 장기 R&D가 되는지 등을 본다"며 "1, 2년으로는 안 된다.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하고, 실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객관적으로 알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초순수는 진입장벽이 높아져 이제는 약간의 강제성이 동반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 엄청 성장할 것이고, AI(인공지능)와 바이오 등 한국의 먹거리를 가장 많이 차지할 포지션이 물이다. 물은 지금 일본이 주도하고 있지만 국가와 미래를 위한 확고한 신념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K-초순수' 상용화는 국내 글로벌 대기업의 협력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맞물렸을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이 수석연구원은 "결국 수요처인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국산 기술을 사용해줘야 하는데, 새로운 것을 쓰는 게 두렵기 때문에 주저한다"며 "환경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과제를 만들어 준다면, 이들 기업을 설득해서 실적을 확보하면 좋을 것 같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실적이 있다면 외국 진출은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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