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은 돈보다 가치있다"…‘인타임’이 예견한 분초사회 [오코노미]

입력 2023-11-16 14:10 수정 2023-11-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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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타임’에서 시간으로 음식 값을 결제하는 모습.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인타임’에서 시간으로 음식 값을 결제하는 모습. (출처=네이버 영화)

“커피 한 잔에 4분? 어젠 3분이었잖아요.”

“시간 없으면 마시지 마.”

시간이 곧 돈이자 생명인 사회. 영화 ‘인타임’ 속 세상이다. 25번째 생일에 노화가 멈추도록 설계된 2169년, 모든 인간의 팔에는 시계가 내재돼 있다. 시간이 화폐로 작용하는 경제체제에서 각 개인은 팔에 나타나는 시간으로 밥도 사 먹고, 월세도 내고, 버스도 탄다.

다만, 유의할 점이 있다.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팔에 나타나는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심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미처 시간을 챙겨두지 못했거나 도둑맞기라도 하는 날엔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노동과 시간, 시간과 생명의 교환으로 평화로이 유지되던 ‘인타임’ 속 세상은 하루 벌어 하루 생명을 유지하던 윌 살라스가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되며 위기에 처한다. 사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나눠 쓰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을 독점한 소수가 영생을 위해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대부분의 사람이 희생되도록 내버려 뒀을 뿐이다. 한정된 영토에서 영생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며 “남의 시간을 빼앗아야만 내가 영원히 사는거야“라고 말하는 등장인물처럼 ‘인타임’ 속 부자들은 영원히 살기 위해 물가, 인구 등을 조절하고 있었다. 세계의 비밀을 접한 윌 살라스는 실비아 웨이스와 함께 시간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 쫓기면서도 부자들로부터 시간을 훔쳐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성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영화는 시간이 곧 돈이고 생명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시간, 일, 돈, 인간관계 등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과 그 요소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도 유한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인간에 일침을 날리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공상과학적 설정들을 통해 돈과 시간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생을 누릴 만큼 부자인 실비아 웨이스는 윌 살라스에게 “가난하면 죽고 부자면 헛살죠”라고 말한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영생을 누릴 만큼 부자인 실비아 웨이스는 윌 살라스에게 “가난하면 죽고 부자면 헛살죠”라고 말한다.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해 지는 세상이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연말 연초 서점 매대 맨 윗자리를 점령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2024년의 키워드 중 하나로 ‘분초사회’를 제시했다. 분초사회란 시간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는 사회를 말한다. 볼 것, 할 것, 즐길 것이 넘쳐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돈보다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시간 대비 가치를 의미하는 ‘시성비’가 중요해졌다. 시간이 아까워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 등을 배속으로 감상하거나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고,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춰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하는 것이 ‘시성비’ 현상의 대표적인 예이다.

▲간호사 주4일제 스캐줄 근무표 예시. (출처=kbs‘9층시사국’캡처)
▲간호사 주4일제 스캐줄 근무표 예시. (출처=kbs‘9층시사국’캡처)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노동현장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최근 서울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에서는 간호사 주 4일제 시험 사업을 실시했다. 고강도 업무를 소화해야 하는 간호사의 업무 만족도와 효율성에 평일 하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주 4일제 도입’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간호사의 이직 및 퇴직 의향이 17.4%에서 10%로 떨어졌고 2019년부터 해마다 3~6명 있던 퇴사자도 0명을 기록했다. 일과 삶의 균형 만족도 역시 2배 상승했다. 게다가 시험 사업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노동 시간 감소에 따라 임금이 감소했음에도 “임금 10%로 깎아도 행복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동자들의 만족도와 업무 효율이 상승함에 따라 의료서비스 질도 함께 상승했다.

주4일 제를 도입한 한 중소기업 역시 극적인 효과를 경험했다. 시스템 정립 및 안정화까지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직원 만족도는 물론 생산량도 상승했다. 직원들은 “평일에 자유 시간이 생겨 행복하다”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입소문을 타고 입사 경쟁률도 100대 1로 올랐다.

▲(출처=업워크 페이지 캡처)
▲(출처=업워크 페이지 캡처)
청년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긱 워커’ 현상 역시 분초사회의 도래를 방증한다. 긱 워커는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 필요할 때에만 일하는 독립 계약자를 말한다.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공연이 있을 때 연주자를 섭외해 했던 단기 공연을 뜻하는 ‘긱’에서 유래했다. 2억 5천만 명의 글로벌 프리랜서들이 등록된 ‘업워크’는 대표적인 긱 워커 플랫폼이다. ‘고용 불안정’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기간 및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업워크’의 특징은 1분, 1초가 소중한 현대인들에게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을 생명처럼 여기게 된 현대인들에게 매일 규칙적으로, 온종일 매여 있어야 일터는 차선책이 된 것이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정치권에서는 근로시간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정부는 13일 “주 52시간제를 유지하고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발표 이후 정책 추진 방향을 둘러싸고 노동 시간을 줄이면 굴러갈 수 없는 업종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반응과 노동시간을 줄이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대립하고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1752시간)보다 연간 149시간 더 많다. 주당 실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자 비중 역시 7.5%로 EU의 두 배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 현상과 ‘삶과 일을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해 노동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이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정책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국가 경쟁력과 기업의 성장도 고려하되 영화 ‘인타임’ 속 사람들처럼 시간 부족으로 존재론적 위협을 받는 국민이 감소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개인 시간 역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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