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區석區석-영등포구 니트컴퍼니] “고립‧운둔청년 모인 ‘가상회사’…우리만의 아지트”

입력 2023-1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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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 청년들이 출근하는 가상회사
온라인 출·퇴근 및 오프라인 모임
이름·나이 대신 닉네임으로 활동
“내 삶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

▲고립 위기에 처한 은둔·니트 청년들을 위한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모집 포스터. (자료제공=영등포구)
▲고립 위기에 처한 은둔·니트 청년들을 위한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모집 포스터. (자료제공=영등포구)

저에게 니트컴퍼니는 같은 처지에 있는 청년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죠.

니트컴퍼니 영등포점 팀장 오지연(30·활동명 쟌쟌) 씨는 31일 본지와 만나 “무직인 청년들과 함께 가상 회사에 다니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 씨는 “당장 일해야지, 돈을 벌어야지를 벗어나서 진짜로 내가 누구랑 무슨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라며 “청년들 간 교류가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무직이자 고립·은둔 상태에 놓인 청년들이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가상회사 ‘니트컴퍼니’에 입사했다. 청년들은 니트컴퍼니에서 자신이 정한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매일 온라인으로 출·퇴근한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청년센터 중 한 곳인 ‘영등포 오랑’으로 직접 출근해 일상생활의 리듬을 되찾는다. 이들은 주중에는 업무 인증을, 휴일과 병가·월차인 경우는 생존 인증을 해야 한다.

서울 영등포구는 9월부터 무직기간이 한 달 이상 된 39세 이하 청년 27명을 모은 가상회사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서울에 사는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의 4.5%로, 최대 12만9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는 이러한 청년들이 가상 회사를 통해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개인 역량을 강화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팀장 이서연 씨가 영등포오랑에서 출석체크를 진행하고 있다.  (김채빈 기자 chaebi@)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팀장 이서연 씨가 영등포오랑에서 출석체크를 진행하고 있다. (김채빈 기자 chaebi@)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또 다른 팀장 이서연(30·활동명 토리) 씨는 “처음에는 20명을 기준으로 모집했는데, 첫날부터 인원이 다 차고 최종적으로 27명이 모이게 됐다”라며 “네이버 밴드를 통해 출석체크나 업무일지를 올리는 일종의 사무실 역할로 활용하고, 단체 카카오톡 방은 이야기를 하는 휴게실로 쓴다”고 말했다. 이어 “줌으로 진행하는 주간회의 안건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은?’,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은?’ 같이 사원분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라고 전했다.

니트컴퍼니는 평소 온라인으로 활동하다 오프라인 활동은 주 1회씩 자발적인 참여 아래 이뤄진다. 활동은 구의 지원을 받아 서울청년센터 중 한 곳인 ‘영등포오랑’에서 진행된다. 이들은 직접 만나 전시회 관람, 피크닉 등 야외활동뿐만 아니라 책 읽기 같은 각자의 업무를 수행한다.

지난달 27일 방문한 영등포오랑에서는 7명의 청년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칠판에는 오늘의 점심 메뉴부터 시작해 참석자들의 닉네임이 적혀있었다. 청년들은 오랑 내 있는 책을 가져와서 읽거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등 개개인이 오늘 하고자 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쥬쥬(30·활동명) 씨는 “몸이 안 좋아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게 됐는데,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휴대폰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라며 “무기력한 상태였던 제가 니트컴퍼니에 입사해 다시 일어나 열심히 살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오프라인 활동은 다른 사람들과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고, 보드게임이나 한강 피크닉도 떠날 수 있어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저와 같은 청년들이) 무업 기간을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니트컴퍼니 통해 친구·동업자로…“함께 교류 나눠봐요”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팀장인 오지연(왼쪽) 씨와 이서연 씨가 오늘의 업무인 '책 읽기'를 위해 책장을 살펴보고 있다.  (김채빈 기자 chaebi@)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의 팀장인 오지연(왼쪽) 씨와 이서연 씨가 오늘의 업무인 '책 읽기'를 위해 책장을 살펴보고 있다. (김채빈 기자 chaebi@)

실제로 니트컴퍼니는 청년들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영등포점의 팀장을 맡은 오 씨와 이 씨는 니트컴퍼니를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경우다.

오 씨는 “2021년 니트컴퍼니가 서대문구와 협업했을 때 당시 참여자였다”라며 “당시에는 한 달 후 프로젝트를 진행해 지원금을 받고 모임을 열 수 있게 해주셔서 사내클럽에서 (이 씨와)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서로 뜨개질, 소품 만들기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데 플리마켓에 나가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여러 절차가 필요했다”라며 “니트컴퍼니 사무실에서 마켓을 한 번 열어볼까로 시작해 서울숲에도 마켓을 열었고, 망원 골목상권에서도 협업 제안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였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함께 두드리니까 안 되는 일이 없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현재 서울시는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하고 사회에 복귀하기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체계적 청년 지원’과 함께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차별이나 무관심 대신 사회적으로 응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회적 관심 확산’을 골자로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두 팀장은 니트컴퍼니가 고립‧은둔 청년에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니트컴퍼니에 들어와서 삶의 다양한 방향을 본 것 같다”라며 “취업만이 꼭 길이 아니라 무엇인가 만들어서 팔수도 있고, 글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삶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자세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쥬쥬 씨는 고립·은둔 상태에 놓여있거나 오랜 기간 무직 상태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전했다. “당장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바꾸고 싶다면 니트컴퍼니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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