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내년도 R&D 예산서 놓친 점

입력 2023-09-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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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38조7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나왔다. 예산은 정책의 방향을 화폐량이라는 냉철한 기호로 표시한 것이며, 정치권력이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해 정부 활동을 이끄는 바로미터다. 매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2024년도 예산의 컨셉트를 ‘긴축예산’으로 잡았다. 내년도 예산안을 ‘분배·균형·미래’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 특징이 또렷이 잡힌다.

우선 분배측면이다. 보건·복지·고용분야의 예산이 이에 해당한다. 매년 꾸준히 늘어온 이 예산은 지난 2015년 정부 전체예산의 30%를 넘더니 올해 35.8%로 올랐고, 내년에도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분배와 균형은 제자리, 미래담보는 퇴보

두번째는 균형 측면이다. 지방행정 예산이 주된 항목이다. 빠른 속도로 꾸준히 늘어온 이 예산은 올해 정부예산의 16%를 넘었고 내년에는 17%를 넘는다. 지방행정 예산은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포퓰리즘 사업으로 급증해 왔다. 이는 역으로 지방 자립도 악화를 반영한다. 그 해소책은 세원의 대폭적인 이양과 동시에 교부금과 보조금을 대폭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야 지자체의 능력을 키우고, 참신하고 능력 있는 지방 행정가를 발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미래측면이다. 교육과 연구개발 예산이 속한다. 특히 연구개발 예산은 ‘교육정책-과학기술정책-산업정책-국가경쟁력-국력’으로 이어지는 국가미래전략의 머릿돌이 된다. 역대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마치 성역(聖域)처럼 여겨 꾸준히 늘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년도 예산에서 연구개발의 성역은 깨졌다. 그리고 정부가 강조한 긴축예산의 회초리를 대표적으로 맞게 됐다. 이런 점에서 성장일변도에 익숙해온 과학기술계가 혼란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라의 현재를 든든히 하는 분배와 균형은 거의 제자리를 지켰고, 미래를 담보하는 과학기술은 정부 예산의 5% 가까이에서 4%대로 내려갔다.

차제에 지난 30년간 예산 증가 일변도의 과학기술정책을 재점검해 보는 것도 지금이 좋은 시점이다. 양적 성장은 했으나 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의 본산인 출연연구기관의 역할과 기능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변화해 왔는지, 대학의 논문 수 팽창과 우수 논문 수 빈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년 기술무역수지 적자국으로 매년 주력 산업에서 적자 규모가 크게 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등의 분석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국가R&D 100조 원 시대 … 예산 감축 아쉬워

그러나 이번 연구개발 예산안을 보면서 몇 가지 놓친 점을 지적해 본다. 우선 지난 3년간 백신 예산이 어떻게, 얼마나 씌어졌는지, ‘코로나19 백서(白書)’를 만든 뒤에 예산을 기획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연구개발전략은 어느 분야보다도 기업 등 민간부문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그 선도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국가 연구개발비 100조 원 시대(정부 30조 원, 민간 70조 원)를 선언한 게 엊그제다. 그런데 정부예산이 전년비 마이너스로 갈 때 민간에 주는 시그널은 심각하다. 주요 기업은 불황 속에서도 첨단시설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터라 연구개발 축소가 몹시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최초의 연구개발 예산 절감책’이 내년도로 국한될지 아니면 ‘뉴 노멀’로 굳혀질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예산과 국감정국을 맞는 2023년 가을은 과학기술계의 체력을 진단하는 30년 만의 신체검사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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