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한국이 ‘지는’ 싸움

입력 2023-08-09 05:00 수정 2023-08-0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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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구 370만 명의 조지아. 그 조그만 국가가 지난해 경제성장률 10%를 달성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여파로 전 세계 경제가 죽을 쑨 상황에서 거둔 이례적 성과였다. 비결은 뜻밖에도 러시아의 ‘자충수’.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징집을 시작하자 11만 명 이상이 조지아로 피난을 갔는데, 이중 절반이 IT를 포함한 기술자였다. ‘얼떨결에’ IT 인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꽃피운 성장이라 씁쓸하지만, 조지아 사례는 기술산업의 힘을 웅변한다. 경제성장뿐인가. 기술패권 경쟁 시대, 첨단기술은 국가 운명을 좌우한다. 승자독식의 기술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쥔다. 기술이 곧 경제고 안보며 생존 그 자체인 이유다. 싱가포르를 경제 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는 21세기 안정과 성장의 중요한 화두는 ‘민주’가 아니라 ‘인구’라고 내다봤다. 특히 인적 자원의 질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한다고 했다.

문제는 기술인재가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 세계 109개국의 IT 기술자 수는 2517만 명 정도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 인재는 더 ‘희귀’하다. 반도체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인력은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건 미국은 주요 기업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였지만, 당장 기술자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인구 14억 명의 중국도 기술인재 부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 반도체 기술자가 30만 명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뺏고 뺏기는 인재 쟁탈전이 불가피한 셈이다.

기술전쟁에서 오십보백보인 경쟁국들은 인재 확보에 명운을 걸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이란 ‘프리미엄’에 각종 혜택까지 더해 세계 인재를 빨아들인다. 미국을 바짝 뒤쫓는 중국은 그 인재 ‘훔치기’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외 고급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千人)계획’은 ‘만인(萬人)계획’으로 확대됐다. 말이 좋아 스카우트지, 돈을 미끼로 기술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단축한 중국은 맹렬하게 격차를 좁히고 있다. 싱크탱크 ASPI 분석 결과 주요 기술 44개 중 37개에서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주력 산업의 기술 경쟁력은 후발주자 중국에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수준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도 큰일이지만 더 심각한 건 ‘생각’의 격차다. 리콴유는 기술역량보다 중요한 게 가치관 같은 무형적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제아무리 복잡해도 지식을 가르치는 건 쉽지만 사고방식을 심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다. 가정·학교·사회 저변에 흐르는 무형의 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면서 진취성으로, 또 혁신성으로 발현돼야 하는 것이니 지난한 과정임이 분명하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은 건강할까. 미래 사회를 향한 동경심과 호기심을 키워야 할 학교 현장에서 자기 자식 말고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부모, 그걸 보고 배운 애들이 어떻게 하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할까 궁리하는 현실에서 무슨 진취성이 싹을 틔울까. 정치놀음에 휘둘려 과학자가 돌팔이로 매도되는 사회에서 어떤 혁신성이 꽃을 피울까. 한국은 기술 그 자체보다 중요한, ‘생각’에서 이미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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