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 두려운 부모들

입력 2023-02-02 05:00 수정 2023-02-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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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십수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중간관리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데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도 밤잠을 쪼개가며 학위를 딸 정도로 열정 넘치던 이였다. 세밑까지만 해도 “내년에 승진할 것 같다”며 들떠있던 그가 한 달도 채 안 돼 퇴사를 결심한 건 8살 난 큰 아이 때문이었다.

“돌봄 교실 대기 9번이에요. 희망이 없대요. 내년을 기약하라고…”

그는 하교 후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고 했다. ‘뺑뺑이’를 돌리려고 급히 학원을 알아봤지만, 이곳은 정원이 다 찼고 저곳은 픽업이 어려워 돌봄교실 아이들만 받는다고 했단다.

양가 부모님에게 손을 빌릴 상황도 안되고, 이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듯해서 결국 자기가 일을 정리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옆 동네 학원도 알아보지 그랬냐”고 되물었더니 통원버스 스케줄 때문에 등·하원에 1시간은 걸릴 거란 답변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며 울먹였다. 7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처지에서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더 쓰였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돌봄 교실 수는 1만4970개다. 2017년(1만1980개)과 비교하면 25%가량 늘었지만, 학부모의 애 닳는 심정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디다.

돌봄교실에 대기를 거는 학부모는 1만 명에 이른다. 5년 째 줄지 않고 있다. 통계에 잡힌 인원만 이 정도로, 신청 자체를 포기한 학부모까지 합치면 실제 수요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워킹맘 10명 중 9명은 퇴사를 고민한다. 가장 깊게 고민하는 시기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다.

돌봄 교실에 합격한 부모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공간을 만들고, 교사를 구하는 데 허덕이다 보니 학년별·수준별 체계화된 프로그램은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아이들은 3~4시간 동안 종이접기를 하거나, 색칠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양적, 질적 수요를 모두 놓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은 대부분 낳는 것에 집중돼 있다. 곱씹어 보면 나도 임신부터 출산까지 돈 들 일 없었다. 되레 남았다. 올해부터는 0세 70만 원, 1세 35만 원의 부모급여까지 지급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이를 낳는 부모는 없다. 믿을 만한 공적 돌봄은 턱없이 부족하고, 아이 하교할 때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는 눈치가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까지 고려하면 1년 6개월의 육아 휴직도 충분치 않다.

관청이 몰려 있는 세종시의 출산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건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제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적 돌봄을 늘리고, 유연근무제도 활성화해야 한다. 에듀케어(교육 보살핌)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초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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