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 산증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1세기

입력 2022-09-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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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 즉위 후 적국 독일에 손 내밀기도
대영제국의 잿더미에서 53개국 영연방 한 데 묶은 통합의 상징
브렉시트,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21세기 역사도 목격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6월 5일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축제 기간에 왕실 가족들과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6월 5일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축제 기간에 왕실 가족들과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약 1세기에 걸쳐 세계를 바라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생은 영국 외교력의 원천이자 격동의 유럽과 세계 근현대사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여왕은 100년 가까운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평가했다.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여왕은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인 조지 6세는 조지 5세의 차남으로서 왕위 계승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6년 조지 5세의 사망과 함께 그의 장남인 에드워드 8세가 즉위를 포기하면서 조지 6세가 즉위, 여왕은 10세의 나이에 승계 서열 1위가 됐다.

10대 시절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을 겪었다. 여왕이 13세이던 1939년 전쟁이 시작됐고 전쟁이 격화되면서 한때 동생 마거릿 공주와 함께 안전을 위해 런던 서쪽의 윈저성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그는 1940년 14세에 전쟁으로 피해 본 사람들을 위해 첫 라디오 연설을 했다. ABC방송에 따르면 당시 여왕은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며 피란 등으로 가족과 떨어진 영국의 어린이들에게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1942년 16세에 영국 육군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 여왕은 1945년 종전 직전에 육군 여군 부대에 입대해 전쟁에도 참전했다. 종전 후인 1947년 21세의 여왕은 그리스 태생의 영국 해군 장교였던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하고 이듬해 찰스 3세를 낳았다.

▲1953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 직후 남편 필립공과 함께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1953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 직후 남편 필립공과 함께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서거하면서 26세였던 여왕은 왕좌에 올랐다. 당시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었던 그는 케냐에서 부친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195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대관식은 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됐고, 2700만 명이 이를 지켜봤다.

당시 여왕의 대관식은 대영제국의 쇠퇴, 전후 혼란을 겪던 영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대외적으로도 영국의 위상을 높이는 순간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영국은 여전히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지역을 통치하는 군주였지만 1947년 인도의 독립, 1997년 홍콩 중국 반환 등 기세가 기울고 있었다.

여왕은 제국의 잿더미에서 53개 나라를 묶는 영연방을 부상시켰다. 이는 여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자 “찢어진 세계에서 진정한 통합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왕은 1965년 서독을 찾아 2차 세계대전 숙적인 독일과의 화해에도 손을 내밀었다. 그는 당시 서독의 수도인 본에서 서베를린으로 발길을 옮겨 동서독을 나누고 있는 베를린 장벽을 찾았다. 냉전의 최전선이 된 서베를린을 방문한 것은 민주국가로 돌아선 서독을 지지한다는 의미였다고 닛케이는 평가했다.

2002년엔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든 주빌리가 열렸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여왕은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보다 1년 전인 2011년엔 아일랜드가 독립한 후 영국 왕으로 처음으로 아일랜드를 찾아 과거사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여왕은 2020년 1월 영국이 47년 만에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겪는 순간도 함께 했다. 여왕은 브렉시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견해를 밝힌 적은 없다. 다만 2015년 영독 정상이 참석한 만찬 연설에서 “유럽의 분단은 위험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2월 6일 재임 65주년을 기념하는 사파이어 주빌리가 열렸다. 2021년 4월 9일 남편 필립공이 사망한 뒤 여왕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올해 2월 6일엔 재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가 열렸고 그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시달리기도 했다. 5월엔 의회 ‘여왕 연설(Queen‘s speech)’을 찰스 3세가 대신했다.

올해는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브렉시트와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중요한 역사의 순간도 여왕은 목격한 것이다.

2022년 9월 8일 통합의 수호자였던 여왕은 96세로 서거했다. 여왕은 서거 전까지 총 15명의 영국 총리, 13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들을 만났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만난 첫 영국 총리는 윈스턴 처칠이며 그가 만난 마지막 총리는 이달 취임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다. 그는 평생 약 120개국을 방문하면서 265회 이상의 해외 순방을 했다. 그는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수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영국으로 초대해 만나기도 했다. 또 여왕의 재위 기간 총 5명의 교황이 재직했고 여왕은 이 중 4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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