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칸영화제 취재 뒷이야기

▲5월 23일(현지시각) 칸영화제 메인 전당 앞에 설치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홍보 현수막. (송석주 기자 ssp@)

보름간의 칸영화제 출장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출국하기 전에는 해외 출장이라 아주 살짝 들뜨기도 했어요. 하지만 비행기를 타자마자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인천→아부다비→암스테르담→니스→칸으로 가는 일정이 대략 25시간이 넘었거든요. 장시간 비행은 정말이지 고역입니다. 저는 칸영화제도 처음이고, 유럽도 처음이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외국에서 취재하려다 보니 ‘평소에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여러분들도 아시는 것처럼 이번 칸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무려 5편이나 초청됐습니다. 그 영화들을 모두 보고, 감독과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일은 즐겁기도 했지만, 상당히 고되더라고요. 그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인터뷰할 땐,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 힘들어요”라며 하소연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시차 적응을 할 겨를도 없이 여러 일정을 소화하셨다고 해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감독님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곳에 온 한국 감독과 배우들을 가까이서 인터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기자라고 해서 감독과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격의 없이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언론 시사회’에서 보기는 하지만 아주 멀리서 보는 경우가 많고요. 인기 감독이나 배우의 경우 단독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하지만 칸에서는 그들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칸에 온 모든 한국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는데요. 인상에 남았던 분들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이정재 씨는 ‘헌트’에 출연한 주연 배우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첫 연출작이라 그런지 감독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본인이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았으니 아마 상당한 부담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들을 만날 때도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 연출과 시나리오 작업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셨거든요.

▲5월 19일(현지 시각) 영화 관람을 위해 관객들이 극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해당 사진은 칸영화제 드뷔시 극장 앞. (송석주 기자 ssp@)

박찬욱 감독은 참 능변가입니다. 기자의 질문에 반문하거나 선문답하는 감독이 있고, 구체적으로 잘 답변해주는 감독이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후자입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다루는 주제와 형식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데요. 이 부분에 관한 저의 질문에 이제껏 자기가 찍은 영화는 모두 "로맨틱 코미디"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셨던 게 가장 기억이 납니다. 이번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으셨는데, 상을 받고도 남을 영화입니다.

박해일 씨는 ‘헤어질 결심’에서 한국 영화에선 보기 드물게 점잖고 교양이 있는 형사를 연기하셨는데요. 실제 이미지도 그랬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탕웨이 씨는 뜻밖에 장난기가 많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더군요.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제 질문에 “영화가 이곳에서 상영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 납니다.

‘브로커’의 고레에다 감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영화감독입니다. 사인을 받으려고 고레에다 감독의 에세이까지 가져갔는데, 결국 사인을 받았습니다. 올해 칸영화제의 최대(?) 수확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고레에다 감독은 정말 진중하고, 친절했습니다. 또 박찬욱 감독과 마찬가지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늘 마음에 지니고 계신 분 같았어요. 자신만의 영화 철학이 뚜렷했다는 뜻입니다.

송강호 씨는 참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인터뷰할 때, 자리에 앉자마자 “칸에 참 맛집이 많다. 언제부터 계셨냐? 관광은 좀 하셨냐?”라며 특유의 천진난만한 농담을 던지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모에 빛이 난다는 질문에는 “좌동원, 우아이유가 있어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쑥스러운 듯 웃으시더군요. 이번에 가장 송강호다운 연기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한국영화계의 경사입니다.

▲뤼미에르 극장 전경 (송석주 기자 ssp@)

강동원 씨는 시사회 때 많이 봤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잘생김의 범주를 넘어서는 외모를 자랑하시더군요. 더위를 많이 타시는지 인터뷰 내내 손 선풍기를 사용하셨습니다. 칸의 날씨가 참 더웠거든요. 강동원 씨는 인터뷰하기 가장 어렵다는 배우로 종종 거론되곤 합니다. 이번에도 소위 ‘마가 뜨는’ 시간이 좀 있긴 했지만, 답변을 아주 열심히, 잘 해주셨어요. 제작과 시나리오 작업에 관한 계획도 있으시더라고요. 궁금해집니다.

이지은 배우, 그러니까 아이유 씨는 실제로 처음 봤어요. 제가 만난 모든 한국 배우 중 해외 팬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확인한 건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씨를 능가했습니다. 역시 배우의 팬덤과 가수(혹은 아이돌)의 팬덤은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주관이 참으로 뚜렷한 배우였다는 점입니다.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소신껏 답변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브로커’에서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은 영화제 내내 가장 많이 마주친 감독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도 마주쳤어요. ‘다음 소희’는 제가 칸에서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았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였으며 가슴에 남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여성’, ‘노동’, ‘페미니즘’ 등 이슈를 영화적으로 잘 구현하셨는데요. 다음 연출작도 기대가 되는데, 그때는 아마도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칸영화제 프레스 센터.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없다. (송석주 기자 ssp@)

영화제 동안 가장 많이 상주했던 공간이 프레스룸이었습니다. 거기서 해외 기자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참 컸습니다. 유럽 쪽, 특히 프랑스 기자들은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도 언급하긴 했지만, 홍상수, 김기덕 감독을 가장 많이 거론했습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은 프랑스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감독 중 한 명인데요. 그의 영화 이미지가 프랑스 철학(특히 들뢰즈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칸영화제는 복장 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남자의 경우 정장과 나비넥타이, 검은 구두를 신어야 뤼미에르 극장에 입장할 수 있는데요. 저는 구동화, 그러니까 구두 같은 운동화를 신고 가서 정문으로 입장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뒷문으로는 들어가게 해주더라고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월드 프리미어 티켓을 받아 놓고, 영화를 못 보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영화관에서 다시 영화를 본다는 체험이었습니다. OTT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날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걸 칸에서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앞선 언급처럼 이번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기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크나큰 경험이자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