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호미, 편농(便農) 그리고 디지털농업

입력 2021-09-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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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림 농촌진흥청 60주년 기념사업단장

“전 호우미를 써요. Ho-mi. 거의 40년 동안 꾸준히 쓰고 있어요.”

“왜 좋으냐고요? 너무 많아서 설명하기 힘든데, 땅에 좁다란 홈을 파거나 화단 고랑을 만들 때 또 잡초를 뽑을 때 좋아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린 한국 호미에 쏟아지는 외국인들의 찬사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꽃삽 등 원예 도구는 모양이 평평해 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거나 적당히 땅을 파기에는 좋지만, 밭고랑을 갈고 잡초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호미는 목 부분이 ‘ㄱ’자로 꺾여 있고, 날 부분이 뾰족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역삼각형 모양이다. 이런 생김새 덕분에 호미를 내리쳤을 때 모든 힘이 날의 끝에 모이게 되어 적은 힘을 들이고도 쉽게 땅을 팔 수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은 김맬 때 기능적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흙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호미의 기능성을 문학적으로 예찬했다.

중국,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호미가 유독 한국에만 있는 이유는 척박한 농업환경을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과학적 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 평지가 적고 산악지대가 많아 농지가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에서는 산악지대의 좁은 땅도 최대한 토지로 활용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비탈진 밭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고, 이런 작업방식은 필연적으로 많은 인력을 요구하기에 여성이나 아이 등 근력이 약한 사람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호미가 개발된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농업 발전을 위한 ‘삼농(三農)정신’의 가치를 강조했다. 농민들이 잘 먹고 살아야 하고(후농·厚農), 농사짓기가 편해야 하고(편농·便農), 농민 지위가 높아져야 한다(상농·上農)는 것이다. 호미를 비롯한 우리 전통 농기구는 바로 편농 정신의 결정체이자 어렵고 불편한 일을 맞닥뜨리면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인만의 실용적 DNA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농업유산이다.

하지만 이제 농업은 전 세계적으로 건설업 및 광업과 함께 가장 위험한 산업으로 분류된다. 안타깝게도 농업인들은 작업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 호흡기계 질환, 농약 관련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청년농업인을 면담한 논문을 보면, 육체적 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농업인이 적지 않고, 육체적 노동에 대한 두려움이 농업으로의 진출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 지능화 기반의 디지털 농업기술을 개발해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편리성, 환경성을 개선하기 위한 디지털농업 촉진 기본계획을 마련,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참외 수직·수경재배 기술 연구가 있다. 첨단 디지털 온실은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으로 온실 내부 온도·습도 환경을 계측하고 외부 기상대에서 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효율적 환기와 냉·난방이 가능해 연중 참외 생산의 길을 열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참외는 줄기가 시설 하우스 바닥에서 전개되며 자라는 포복성 작물이다. 시설에서 참외를 재배하는 농업인의 경우 덩굴 유인, 줄기 잘라주기와 수확 등 많은 작업을 엎드린 채 하기 때문에 허리, 다리 부위 근골격계에 가해지는 노동 강도가 매우 크다. 참외 수직 수경재배는 농업인 근골격계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고, 예비 청년농업인이 가질 수 있는 ‘농사는 힘들다’라는 우려를 말끔히 떨어낼 만큼 획기적인 기술로 기대를 모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첨단 디지털 온실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역설한 편농의 최첨단 버전이 아닐까 싶다. 아직 우리나라 디지털농업이 EU나 미국과 같은 디지털농업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산업화는 늦었지만 전 세계에서 정보화는 가장 앞선 나라로 만든 한국인이 지닌 실용적 DNA가 있는 한 그 격차는 곧 좁혀질 것으로 확신한다. 2022년 개청 60주년을 맞는 농촌진흥청은 녹색혁명, 백색혁명, 품질혁명에 이은 디지털농업 혁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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