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정책과 현장의 사이에서, 우문현답이냐 우이독경이냐?

입력 2021-07-29 19:07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한때 건배 구호로 ‘우문현답’이 유행했다. ‘우리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라는 뜻이다. 현장경영이 인기를 끌던 시절에 주로 기관장들이 많이 애용했다. 당시에는 하도 많이 들어 식상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이 건배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코로나 19로 단체 회식이 준 탓도 있지만 그만큼 현장에 관한 관심이 떨어진 게 더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현장이 왜 중요한가? 정책은 현장의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입만 열면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책은 수요자인 국민을 위해 수립되어야 한다. 정책의 성과도 현장의 국민 반응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정책은 하향식으로 만들어진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공무원이 이를 받아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마련한다. 집행기관은 정책을 현장에서 이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기 일쑤다. 현장과 거리가 멀수록 정책의 효과는 약화된다. 아니, 역효과가 나타난다. 정책의 취지와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 국민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 한 예가 부동산 정책이다. 지난 4년 동안 26번의 부동산 대책이 시행되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주거복지를 향상하려는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대책이 발표될수록 부동산 가격은 내리기는커녕 오르기만 했다. 이제는 온 국민이 집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집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모두 속이 타고 불안하기만 하다.

최저임금도 현장과 괴리된 대표적 정책이다. 애초에 1만 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처음부터 무리해 올리려다 온갖 원성을 사게 되었다. 2018년 한 해의 인상률 16.4%는 현장을 외면한 과속질주의 표본이다. 노동자의 최저 수준 생활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인상은 필요하다. 하지만, 갑작스레 급격히 인상하면 현장에서 이를 수용할 수 없다. 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수요가 감소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저임금 일자리를 걷어내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현장의 차이를 반영해 업종이나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자는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 급격하고 경직적인 정책은 현장의 수용성이 떨어져 겉돌게 된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로보다 생계를 걱정하는 노동자도 있다. 일을 적게 하고 임금을 많이 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고 싶은 노동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주 52시간을 강제하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제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현장의 요구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이번에 결정된 5차 재난지원금이다. 왜 재난지원 차수마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지원과 소상공인의 피해보상에 집중하는 선별지원이 논쟁거리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번 5차 재난지원금에서는 전 국민 100%에게 주느냐, 80%만 주느냐로 실랑이하다 88%로 끊어진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왜 하필이면 88%인가? 앞으로도 6차, 7차로 계속 재난지원금이 이어질 텐데, 그때마다 매번 새롭게 지원원칙과 기준을 갖고 논란하게 될 것이 걱정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필요하다. 국민도 코로나 19 방역에 참여하고 희생한 것에 대한 위로금을 받아야 한다. 소비 진작과 내수활성화를 통한 경기회복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코로나가 종식된 다음이어야 한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직접적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손실 보전이 시급하다. 전 국민의 88%에게 주기로 확정한 날에 어느 최고 정책가가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상위 12%에게 미안하다는 발언을 했다. 아마 현장을 몰라서 나온 발언일 거로 생각한다.

보통 정책이 현장에 맞지 않거나 효과가 없으면 방향을 수정하고 속도를 조절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면 정책과 현장이 따로 논다. 현장의 많은 사람이 아우성을 쳐도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듣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소처럼 우직하고 미련하게 보인다.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한다. 맞다. 현장을 모르면서 고집부리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

언론이나 야당이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정파적이라 치부해도 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현장과 괴리된 정책의 후과를 경험하면서 우문현답이 진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우문현답이란 건배사가 그립다.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다시 회식이 시작되면 곳곳에서 우문현답을 건배 구호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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