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

입력 2021-06-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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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은 회의를 마치고 대국민 보고를 하였다. 주권을 잃고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한반도 분단을 결정한 포츠담회의가 마음 속에 맴돌았다고 소회를 밝히며,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방역, 탄소중립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와 지지와 협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당한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자랑스런 일이다.

1997년 겨울, 정부는 나라 금고에 달러화폐가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달러 빚을 얻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구제금융을 융통하기 위해 우리는 굴욕적이라고까지 표현한 구조조정을 당했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스스로 결정한 운명이 아니었다.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내수기반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에 매진해 왔다. 외환위기 당시 무역의존도(수출·수입액/국내총생산)는 50% 수준이었고 성장할수록 무역과 달러 의존도는 높아졌다. 2008년 90%를 넘어 정점을 찍고 2019년은 64% 수준이다. 문제는 무얼 팔아 달러를 벌고 그 달러로 무얼 사와야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30.4% 수준, 에너지자급률은 2.4% 수준이었다. 나라살림 형편이 달러 빚을 내서 그걸로 해외에서 먹거리와 에너지를 사오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버텨낼 수 없었다. 당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IMF의 구조조정을 받으며 달러 빚을 얻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구제금융을 거부했다. 우리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았지만 사회 유지의 근본인 먹거리와 에너지를 어느 정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었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 버텨내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개인도 스스로 먹고살 수 있어야 부모나 외부에 의존하거나 간섭받지 않고 자기의 삶을 결정할 수 있듯이, 한 사회도 스스로 자립·자존할 수 있는 역량을 어느 정도라도 갖추어야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공동체의 허약한 의존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경고였으나 우리는 체질 개선보다는 일단 쥐어짜서 빚을 갚고 보자는 길을 택했고 사회공동체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길보다는 각자도생의 경쟁적인 물질 성장에 몰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논란이 있었을 때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 맞서자는 민주, 평화 촛불이 있었지만 이미 포섭되어 있는 우리의 삶은 민주정부라 하여도 파병 요청을 거부하는 결정은 할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을 보고 고 권정생 선생이 쓴 글의 제목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였다. 석유와 달러에 의존해 물질을 누리지만 스스로 삶을 결정할 역량과 의지는 없는 우리의 모습을 통찰하고 있다.

먹거리 자급력의 요소로는 농사를 짓는 사람 수, 연령대, 농사지을 수 있는 토지 면적, 농지의 지력, 농업용수, 종자 등을 꼽는데 우리 사회는 현재 합계출산율만큼이나 어느 하나 긍정적인 요소가 없다. 자급력을 무시하고 내부의 사회발전 동력을 소홀히 하면 정치, 경제, 기후 등 외부환경 변화에 휘둘려 쇠퇴하는 경우를 역사나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곡물자급률은 21.0%까지 낮아지고, 에너지자급률은 근래 재생에너지가 조금 늘었지만 6.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식품 수입량은 734㎏으로 20년 새 두 배가 늘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수출이 늘고 달러를 벌어와 먹거리와 에너지를 양껏 수입해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유한한 지구에서 지금의 풍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기후위기 시대에?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사회의 여건을 성찰하고 사회의 건강한 지속성, 주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 성장의 위기, 기후위기 상황은 에너지 체계를 전환하고, 먹거리의 생산과 자급률 제고, 수급과 소비방식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깥 나라 정상들이 대접해 준다고 우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에너지와 식량주권을 확충하려는 실천 없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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