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주식시장은 어떨 때 무너질까?

입력 2021-06-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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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리서치 대표

최근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 시장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은 것 같다. 오늘은 어떨 때 주식시장이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지, 그 징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만장일치의 분위기가 조성될 때 주식시장은 고점이다!

지난 28년 동안 이코노미스트, 즉 경제분석가 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의 주식시장 붕괴를 경험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당시 필자는 한 은행의 딜링룸, 즉 외환 및 파생상품 트레이딩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해 초, 딜링룸의 멤버와 각계 전문가가 모여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전망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장의 참가자와 이코노미스트의 의견은 일치될 수 없다. 각자의 경험이 다 다른 데다, 중시하는 지표도 서로 차이가 나기에 독창적인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달랐다.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경기에 대해 ‘만장일치’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때 어떤 참석자가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주장을 펼쳤다. “앞으로 중국은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고, 지리적 여건이나 산업의 연관을 감안할 때,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이 끝없이 늘어날 것이니 우리 경제도 ‘고원(高原)경제’를 누릴 것이다.”

여기서 고원경제란, 대관령처럼 높은 산 위에 평평한 들이 펼쳐지듯 성장률이 안정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지만, 필자조차 이때는 이 주장에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 경제가 너무나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었기에,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중국의 수요가 이를 충분히 상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여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의 벽을 넘어서며 강력한 인플레가 발생한 데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수요마저 감소한 충격으로 중국 경제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심각한 불황을 겪고 말았다.

십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당시 들었던 ‘고원경제’라는 말이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건과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는 1929년 10월 14일 투자자 모임에서 “주가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고원(高原)에 이르렀다”고 자신 있게 말한 바 있지만, 열흘 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검은 목요일’이 출현한 데 이어 3년간 다우지수가 80% 이상 폭락하는 역사상 최악의 약세장이 찾아왔다.

어빙 피셔 교수처럼 영향력 있는 학자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경제를 낙관한다는 것은 매우 부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낙관적인 경제전망 속에서 사람들의 투자 붐이 발생하며 주식 가격이 고평가 수준을 넘어서서 ‘거품’ 국면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 가격이 오르고 큰돈을 번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시장금리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던 이가 큰돈을 버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예금을 인출해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장금리는 더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참고로 2008년 3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5.3%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금리가 상승할 때 주식시장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주가수익비율(PER)이 50배에 이르는 기업 A를 생각해보자. A기업은 미래 전망이 밝은 투자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어 자금 조달이 필요한데, 시장금리가 5% 이상일 때 은행에서 대출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A기업의 주가 수익률(이익/주식가격x100)이 2%에 불과하기에,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대출보다 증자가 훨씬 유리한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A기업의 경영자 입장에서 자기 회사 주식의 기대 수익률이 계속 낮아지는데 시장금리가 상승하니, 대출보다는 증자가 훨씬 이익이 된다.

따라서 ‘만장일치’ 분위기가 조성될 때에는 금리 상승 및 주식 공급의 과잉이 출현하며, 이는 결국 주식 가격의 하락 압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대출이 늘어나는데도 연체율이 상승하면?

만장일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못지 않게 자주 불황을 일으키는 요인은 과잉 대출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2~2003년의 카드 위기인데, 200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신용카드사들은 돈을 빌려줬다가 떼이는 신용 위험에 대해 매우 신경을 써 미국 신용카드사보다 연체율이 더 낮았다. 그러나 2000년을 고비로 카드 발급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며 급격한 신용의 팽창이 발생했다. 2002년 한 해 동안 발행된 신용카드 수는 2억 장을 넘어섰으며, 카드 이용금액도 1999년 90조 원대에서 2001년에는 443조 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당시 정부가 카드 사용 촉진 정책을 펼친 이유는 2000년 후반부터 시작된 경기 둔화 때문이었다. 정보통신 거품이 붕괴되는 가운데 수출 경기가 나빠지자, 내수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카드 사용을 촉진했던 것이다. 물론 카드 사용을 촉진함으로써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경제 내에 존재하는 지하경제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등의 긍정적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기간 신용카드 사용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의 연체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 일반은행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7.7%이던 것이 2002년에는 8.6%까지 상승했고, 금융기관이 미래의 손실에 대비해 적립해 두는 돈인 대손충당금도 2001년 말 2조3000억 원이던 것이 2002년 말에는 7조3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대출, 정확하게는 신용서비스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연체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일반적으로 대출을 받자마자 연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는 둘 중의 하나가 벌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2008년 미국처럼 신용도가 떨어지는 이에게 대출이 제공된 것, 다른 하나는 기존의 대출자가 연체를 갚을 목적으로 새로운 대출을 일으키는 것. 두 가지 모두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치명적 손실을 입게 된다. 대출로 대출을 막는 악순환에 빠져든 사람이나 기업이 극적으로 회생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식시장이 버티기 힘들다. 은행이나 카드사의 경영여건이 어려워지고, 이들이 고객에게 “대출금의 만기 연장이 어렵습니다”라고 통보할 때, 아무 문제없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기업이나 가계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채의 증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연체율의 급격한 상승 징후가 보일 때에는 주식시장 및 경제 여건이 건전한 상태인지를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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