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기술발전, 일자리, 기본소득에 대한 사고실험

입력 2021-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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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소득불평등 개선은 복지국가 이념에 따라 이뤄져 왔다. 이 이념은 일자리와 노동에 기초한다. 국민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실직, 질병, 재해, 은퇴 등으로 노동할 수 없으면 국가 보조와 자신의 기여로 마련된 실업보험, 의료보험, 상해보험, 국민연금에 의지하여 삶을 유지한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노동할 수 없으면 국가는 공공부조를 통해서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 준다. 그런데, 현 복지체제는 최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소득에서 일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근로소득의 비중이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술의 요체는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 향상은 동일 노동으로 더 좋고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하면 총산출에서 차지하는 근로소득의 비중은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그 결과로 근로소득은 산출을 모두 소비하기에는 점점 부족해진다. 근로소득이 줄면 자본소득은 늘어나겠지만 자본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에 집중되어 그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 경제가 완전히 자동화되어 기계가 노동 없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기계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분배할 것인가가 의문시된다. 이 사고 실험 내에는 임금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 지출을 뒷받침할 어떤 근로소득도 없다. 모든 생산이 자동화되는 현상이 현실에 완전히 구현되지는 않겠지만, 이 사고 실험은 현실에서 근로소득이 점차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줄어들어서 소비자 지출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현재 경향의 극단적 양상이다.

현재 인공지능(AI)이 인간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AI의 발전이 일자리를 줄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AI가 현재의 일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산출에 비해서 근로소득의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설사 일자리가 늘어나더라도 그 일자리는 이제 더 이상 중산층을 굳건히 뒷받침하던 과거의 안정된 일자리가 아닐 것이다. 불완전 고용이 늘어나는 현실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사실 지금도 좋은 일자리가 없을 뿐이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중소기업과 농업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일자리 자체는 넘쳐난다.

다시 사고 실험으로 돌아가자. 경제가 완전히 자동화되면 정부는 매년 모든 사람에게 바우처를 지급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해서 상품과 서비스를 배분할 수 있다. 정부는 해마다 예상되는 산출물 수준에 맞춰서 바우처를 발행해야 할 것이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소비자 소득이 전부 바우처로 주어지기 때문에 총수요의 100%가 기본소득이다. 바우처를 균등하게 배분할 것인가 아니면 차별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는 추가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비근로소득이 주어져야만 산출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총수요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것이 기술 발전에 따라 기본소득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의 논리적 기초이며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의 지도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현재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재원 마련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사고 실험처럼 상상력을 더 발휘해 보면 논쟁 구도가 바뀔 수 있다. 현재의 첨단기술사회에서 재원이 마련되어야 기본소득 도입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 없이는 산출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총수요가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기술은 이제 더 이상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하는 요인이 아니라 인간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택할 수 있는 기회의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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