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제를 덮은 4류정치 청산하려면

입력 2020-11-09 17:57 수정 2020-11-1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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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오프라인뉴스룸 에디터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기업도 갈 길이 멀지만 정치와 관료는 아예 답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 사람은 지난달 타계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다. 1995년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다. 25년이 지난 지금 바뀐 건 기업뿐이다. 기업은 2류를 벗어던졌다.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탄생했다. 정치와 관료사회는 변한 게 없다. 정권 눈치를 살피는 보신주의에 찌든 관료사회는 여전히 3류 티를 벗지 못했다. 정치는 변함없는 4류다.

이 회장의 가장 큰 유산은 혁신과 도전을 통한 세계 1등 DNA다. 일제강점기 35년과 한국전쟁, 보릿고개를 거치며 굳어진 변방 국가라는 패배주의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꿔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과 애니콜 15만 대 화형식은 초일류를 향한 집념의 표현이었다. 그 결실이 반도체와 휴대폰 신화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일본을 실력으로 단숨에 넘어섰다. 국가도 못한 극일을 기업이 해낸 것이다. 국민에게 자긍심과 함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렇듯 기업이 초일류를 향해 뛰는 동안 우리 정치와 행정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 도장이 1000개는 필요하다”는 25년 전 이 회장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외형은 많이 개선됐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삼성이 반도체 송전선을 연결하는 데 5년을 허비한 게 우리 현주소다. 기업은 규제의 대상일 뿐이다. 적당히 어르고 손을 봐서 길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그만큼 반기업 정서가 뿌리깊다. 규제공화국은 빈말이 아니다.

정치는 절망스럽다. 이 회장의 4류 정치 발언 후 정권이 진보와 보수로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대로다. 아니 되레 퇴보했다. 대결정치에 정치보복이 일상화했다.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두 사람은 구속됐다. 국민통합과 협치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니 편 내 편을 가르는 진영대결이 판을 친다.

4류정치를 떨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뿌리깊은 이념적 대결주의다. 진보세력은 8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 시절의 운동권 시각에 갇혀 있다. 보수세력은 ‘진보=종북 좌파’라는 구시대 사고를 벗지 못했다. 그러니 진보당과 보수당은 상호 청산 대상이다. 합리적 정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없다. 만나면 얼굴을 붉히고 뒤돌아서서 비난한다. 다수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당은 정권 흠집내기에 올인하는 낯익은 장면이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이유다.

이 회장의 지적은 현재 진행형이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 같다. 민생 법안을 야당과의 협의절차도 없이 밀어붙인다. 임대차법을 강행처리, 최악의 전세대란을 불렀다. 중산층의 보유세 부담을 늘리는 공시가 현실화도 강행했다. 공수처법안도 단독 처리할 기세다. 야당이 말을 안 들으면 밀어붙이는 게 새 공식이다. 국민과의 약속도 안중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만든 민주당 당헌 96조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당헌대로라면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낼 수 없다. 성추문은 중대한 비리다. 민주당은 이를 뒤집었다. 국민과의 약속인 당헌을 바꾸면서 국민의 의견조차 구하지 않았다. 정치 이해만 있을 뿐 혁신의 명분은 사라졌다. 이렇게 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만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야당은 무기력하다. 정권 흔들기에 매달리는 게 전부다. 참신한 대안도, 인물도 없다. 여당이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지지율은 바닥이다.

4류정치에 경제는 신음한다. 높은 상속세 탓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은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지분 상속에 10조 원 이상을 내야 한다. 투기자본의 공격을 용이하게 하는 공정경제3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정치리스크가 경제를 덮는 암울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젠 국민이 나설 때다. 특히 좌우 이념에서 자유로운 중도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후년 대선에서 냉정하게 표로 심판해야 한다. 이념이 아닌 국가의 미래가 판단 기준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안기는 포퓰리즘은 철저히 배격하자. 여권의 정책성과와 야당의 대안을 냉정히 따져야 한다. 국민이 깨어서 따끔한 민심의 회초리를 들어야 4류정치를 청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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