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뉴 트렌드-Wall] 판치는 ‘통상 이기주의’ 자유무역 질서 무력화

입력 2020-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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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규 위원 임명 거부로 WTO 상소기구 기능 사실상 정지

공존·공영으로 세계 경제 성장의 기틀을 다져온 자유무역이 기로에 섰다. 지난 70여 년간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자유무역은 최근 주요 경제대국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로 치명상을 입었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며 비판했던 중상주의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 대국들은 현 자유무역 체제가 자국의 이익을 갉아먹는다며 ‘보이지 않는 장벽(Wall)’ 건설에 나섰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19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주요 20개국(G20)이 5∼10월 추가한 신규 무역 규제가 28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무역 규모가 4602억 달러(약 54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9년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라고 강조했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은 “역대 최고 수준의 무역 규제 조치가 일자리 창출 등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미·중 무역전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신(新)자유무역협정(USMCA)과 관련, 급한 불은 껐지만 글로벌 무역환경을 악화시킬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신임 총재는 “정체 상태에 있는 글로벌 무역이 2020년에 다소 회복된다고 해도, 글로벌 공급망 단절, 통상 정체, 디지털 장벽 등으로 나타난 균열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했지만 합의문 서명까지 어떤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협상 내용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단계 무역협상도 안갯속이다. 개시 날짜도 확정이 안 된 데다가 1단계 무역합의 시행 여부에 좌우된다는 전제 조건이 달린 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 정부가 ‘마이동풍’ 식으로 산업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공정한 경쟁을 왜곡한다며 보조금 철폐를 촉구해왔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수출 촉진을 목적으로 한 기업 보조금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또 미국의 화웨이 블랙리스트 지정처럼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도 풀리지 않은 숙제다.

지난해 12월 10일,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기존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USMCA)에 전격 합의하면서 불안을 잠재웠지만 노동감독관 파견을 두고 시작부터 멕시코와 미국이 부딪힌 것을 고려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봉합된 협정 말고도 미국은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문제와 관련, 75억 달러 상당의 유럽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에서 들어오는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카드도 살아 있다. 지난해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25%의 관세를 매기는 계획을 추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유럽도 장벽 건설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국 집권 보수당이 지난해 12월 12일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올해 1월 31일 브렉시트가 단행될 전망이다. EU와 영국이 설정한 올 연말까지의 이행 기간 동안 양측은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무역, 안보, 외교 등을 포괄하는 미래 관계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영국이 EU와 EU 단일 시장, 관세동맹을 모두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단행할 경우 영국과 다른 나라와의 연간 교역 규모가 110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드 브렉시트 시 영국은 EU 회원국이 아닌 만큼, EU가 제3국과 맺은 무역협정 적용을 받지 못한다. 영국이 개별 국가들과 별도로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한, WTO 체제에 편입된다. 영국이 개별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더라도 EU 관세 체제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무역장벽으로 인한 비용이 5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이 휘청거리는데도 잡아줄 존재가 없다. WTO 출범 24년 만에 분쟁 해결의 최종심인 상소 기구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적어도 3명이 있어야 심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이 신규 위원 임명을 최종 거부하면서 위원이 1명만 남은 상태다.

국가들의 ‘통상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중재 기구의 유명무실 속에 자유무역은 갈 길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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