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금 금융당국에 필요한건 ‘명분’

입력 2019-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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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 금융부 기자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당연한 일이라도 명분 없이는 일을 끌고 나가기 어렵다. 중국 고전 삼국지 속 영웅과 간웅부터 영화 속 건달까지, 이들이 선행과 악행을 시작하기 전 명분을 찾거나 만드는 이유다.

최근 만난 금융사 직원은 명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 금융감독원 직원과 한 카드사 직원이 댓글로 설전을 벌였는데, 며칠 뒤 이 회사가 종합검사를 받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회사 직원은 어느 글에서 열 개 이상의 댓글로 공방전을 벌였다. 카드사 직원은 금감원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금감원 직원은 역공에 나섰다. 결론 없이 설전만 오다가 ‘공공의 적’인 금감원은 다른 금융사들의 합공에 더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며칠 뒤 이 카드사는 금감원 종합검사 대상에 선정됐다는 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금감원이 4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종합검사를 고작 댓글 싸움으로 결정했을 리 없다. 종합검사 대상 회사가 문제가 있었거나,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어서 선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금융사는 종합검사를 왜 받는지 늘 궁금해한다. 아니 억울해한다. 비록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댓글 싸움 하나에서 금융사의 종합검사 이유를 찾는 금감원의 설명 부재가 빚어낸 촌극이다.

금융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엄마’라면, 금융위는 토조차 달지 못하는 ‘아버지’에 가깝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금융위 고유 권한이지만, 직접 영향을 받는 금융사가 이해하지 못하고 통보장을 받아드는 일이 계속되면 그 정책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를 두고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를 관리 감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엔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 없는 지적과 질타는 늘 일을 틀어버리기 마련이다. 틀어져 버린 일을 설명할 시기가 찾아왔을 때 고작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변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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